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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장, 500m 떨어진 카카오 - 구글 방문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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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31일 카카오 사무실을 방문한 최시중 위원장은 “규제에 매이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수습을 도와줄 테니 안심하라”고 격려했다.

#1. 지난달 31일 오후 5시 서울 역삼동의 구글코리아 사무실. 최시중(74) 방송통신위원장이 조원규(45) 구글코리아 R&D센터 사장의 안내를 받아 엔지니어 근무실로 들어섰다. 직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업무에 한창이다. “최시중 위원장입니다.” 동행한 이태희 방통위 대변인이 나직이 말했지만 별 반응은 없다. 사무실 안을 돌며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던 최 위원장이 통화 중인 한 직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한쪽 턱에 괸 채로 악수를 나누고는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그게 기한이 언제까지냐면 말야….” 최 위원장은 허허 웃으며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2. 1시간 후 역삼동 카카오 본사. 이 회사 이제범(34) 대표가 최 위원장보다 한발 앞서 업무실 문을 열고는 외쳤다. “최시중 위원장님 오셨습니다!” 그러자 50여 명의 그 방 직원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위원장이 사무실 안을 한 차례 둘러보고 나갈 때까지 모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립 상태였다. 일정을 마치고 최 위원장이 돌아가기 전, 직원 열댓 명은 현관 앞으로 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카카오톡 파이팅!”을 외쳤다.

같은 날 최 위원장(맨 왼쪽)이 구글코리아를 방문해 염동훈 한국대표(맨 오른쪽)와 조원규 R&D센터 사장(오른쪽에서 둘째)을 만나 사업 현황을 듣고 있다.

 이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현장 답사차 정보기술(IT) 기업 두 곳을 방문했다. 구글코리아와 국내 최대의 모바일메신저 서비스업체인 카카오, 모두 서울 역삼동의 건물 2개 층을 빌려 쓰며 직원 수도 150명 안팎으로 비슷하다. 사무실 간 거리는 불과 500m. 하지만 최 위원장의 방문에 대응하는 두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문화 차이가 드러났다.

 구글 직원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식당에서는 둘셋씩 모여 간식을 먹으며 회의가 진행됐고, 반바지에 맨발로 일하다가 최 위원장이 다가오자 삼선 줄무늬 슬리퍼를 신고 일어나 악수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 연두색 비닐 칸막이를 쳐놓고 일하던 연구개발팀의 한 엔지니어는 최 위원장이 다가가 “왜 텐트를 치고 일하냐”고 묻자 “일하는데 방해받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카카오는 한국 업체답게 ‘의전’에 신경 쓴 모습이었다. 최 위원장이 건물 2층을 방문하자 3층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내려와 인사를 나눴다. 구글에서처럼 ‘저사람 누구냐’며 자기들끼리 소곤대는 모습도 없었다. 회의장에는 음료와 간식이 미리 준비돼 있었다.

 최 위원장의 태도에서도 온도차가 느껴졌다. 염동훈(38) 구글코리아 대표에게는 “구글이 소설 『1984』의 빅브러더처럼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목표 삼은 것은 아닌가?”라고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독주하면 안 된다. 에릭 슈밋 회장이 (이번 방한에) 한국 IT 발전을 위한 복안을 가져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비행장에 내리지 말라고 하라”고 농담과 진담을 섞은 듯 말했다.

 하지만 카카오를 방문해서는 “엄청난 회사가 될 것”이라며 덕담부터 건넸다. 또 “IT 벤처기업 3만 개 중 1%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다. 카카오를 꼭 지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방통위 관계자는 “구글 방문은 슈밋 회장 방한 전에 ‘한·미 IT협력에 힘쓰라’고 압박하는 의미이고, 카카오 방문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표현”이라고 이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슈밋 회장은 조만간 방한해 7일 최 위원장과 면담할 예정이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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