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금 주가는 역사적 저평가 국면 … 기업 실적을 믿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갑자기 젓가락을 놓았다. 창가로 다가섰다. 12층에 있는 식당이라 햇살이 따가웠다.

“이렇게 창문에 필름을 붙이면 여기서 전기가 나오는데….” 2006년 늦여름이었다. 신이 나 태양전지에 대해 한참 얘기했다.

누구도 말을 끊지 못했다. 모두 식사를 끝낼 즈음에야 식탁에 앉았다. 이 사람, 구재상(47·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다.

그해 초 그는 일본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일본 샤프가 태양광 발전 모듈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장 리서치에 나섰다. 동양제철화학(현 OCI)이 태양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해 9월 말 미래에셋은 8%까지 지분을 사들였다. 3만원 선이던 OCI 주가는 올 4월 65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구 부회장은 좋은 주식을 찾으면 끓어오른다. 1988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들어간 증권사에선 전국 최고 약정액을 올리며 32세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97년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을 설립할 때 합류, 간판 펀드인 ‘디스커버리’와 ‘인디펜던스’를 맡았다. 박 회장은 그를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주식 천재”라고 말한다.

고란 기자

요즘엔 그를 보기 힘들다. 노출을 자제하고 운용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가 중앙일보와 jTBC 경제부 기자들의 연구모임인 ‘자산시장연구회’ 10월 강사로 초청됐다. 지난달 20일 그 자리에서 나눈 얘기를 정리했다. 그는 “시장이 어떻든 경쟁력과 가치 향상이 기대되는 기업은 있다”며 “그런 기업을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주식시장에 23년 있었다. ‘달인’이 됐겠다.

 “주식 쉽다는 사람 봤나. 1년은 잘할 수 있겠지만 꾸준히는 어렵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펀더멘털 분석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가격·타이밍·밸런스 등 네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 비싸진 않은지 판단해 2~3년 투자기간을 보고 업종별·국가별로 균형을 맞춰 투자해야 한다.”

 -요즘 ‘펀더멘털’은 어떤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선진국은 경기 둔화가 걱정이다. 신흥 시장은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미국이 내년 1.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쉽지 않다. 요즘 일부 지표가 좋게 나오는 건 상반기가 워낙 안 좋았던 데 따른 착시효과일 수 있다.”

 

-시장을 뒤흔드는 건 유럽 위기다.

 “그리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봉합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통화통합은 됐는데 재정통합은 안 됐다. 내년 유로안정화기구(ESM·상설 구제금융기구)가 출범해야 실마리가 생긴다. 유럽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부채가 선진국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그럼 진짜 원인은 뭔가.

 “실업률이다. 경제성장을 계속했지만 고용이 못 따라갔다. 선진국에서 시위를 왜 하나. 청년실업 때문이다. 고용이 늘어난 게 아니라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가 성장했다. 기업 생산성이 50년대보다 300% 높아졌는데, 자동화·정보기술(IT)·아웃소싱 등으로 실질 임금은 170% 오르는 데 그쳤다.”

 -부채는 문제가 아닌가.

 “ 경제의 3주체는 정부·가계·기업이다. 정부 부채가 심각하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0%가 넘는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연 1조 달러 이상이다. 가계도 문제다. 2000년 선진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80~120%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론 100~160%로 늘었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소득이 늘지 않았고,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전망이 밝지 않다.

 “결국 믿을 곳은 기업이다. 미국 기업의 보유 현금이 2조 달러, 총 자산 대비 7.1%다. 지금 위험관리 한다고 설비투자와 고용을 축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대할 곳은 기업이다. 주식은 정부나 가계가 아니라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은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즐길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좋을까.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이 있는 회사다. 예를 들어 미국의 소비재 기업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금융기업의 주가는 급락했지만 소비재 기업은 건재하다

 -국내 기업은 어떤가.

 “밖에서 위기 얘기가 나오면 원화값이 떨어진다. 자연스레 우리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생긴다. 위기 때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일본 기업보다 상황이 낫다. 상장기업 중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의 경우 부침은 있겠지만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내년에도 모바일, 인터넷, 소비재 관련 업종이 성장을 계속해나갈 것 같다.”

 -시장이 회복세다. 지금 주식을 사도 될까.

 “타이밍은 누구도 모른다.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싸긴 하다. 올해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다. 내년 기준으로는 9배다. 역사적으로 저평가 국면이다. 다만 이익 증가폭이 적어 상승 탄력은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미래에셋의 성과가 전 같지 않다.

 “노력하겠다. 변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펀드 환매 규모가 너무 컸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하루 2000억~3000억원씩 빠져나갔다. 이런 걸 경험한 운용사는 미래에셋밖에 없을 거다. 시장은 오르는데 내일은 또 뭘 팔지 고민해야 했다(※2008년 초 40조원에 육박하던 미래에셋의 주식 자산은 최근 17조원 규모로 줄었다).”

 -일부 매니저가 나가서 그렇다는 시각도 있다.

 “미래에셋은 시스템과 조직력으로 운용되는 곳이다. 스타 매니저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직이 많은 운용업계에서 매니저 따라 수익률이 휘청거려서야 되겠나.”

 -‘미래에셋=주식형 펀드’였다. 최근 이런 등식이 깨진 것 같다.

 “투자자들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상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주식형은 줄었지만 채권형·부동산형·상장지수펀드(ETF)·대체형 자산 등은 늘었다. 다변화를 통해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자산시장연구회=중앙일보 및 jTBC 경제부 기자들의 학습 모임. 재테크가 온 국민의 화두가 된 시대, 자산시장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의 특강과 토론을 통해 시장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얻고자 발족했다. 6월 첫 강연에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용 회장이 ‘2차 양적완화 종결 이후 세계 자산시장의 메가트렌드’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최범수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 ‘인플레이션 시대의 자산시장’을, 김영익 한국창의투자자문 공동대표가 ‘8월 쇼크 이후 글로벌 시장’에 대해 강연했다. 9월엔 강신우 한화투신운용 대표와 함께 ‘1세대 펀드 매니저가 바라보는 자산시장’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1964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