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왜 대학생에게 빚을 권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은행들이 금리 연 10%대의 대학생 전용 대출을 준비 중이라 한다.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리보다 높고, 연체금리 수준에 가깝다. 도저히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30%대에 이르는 제2금융권 대출에 비해선 ‘반값 금리’다.

 은행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소득이 없어 부실화할 위험이 큰 대학생들에게 10%대의 돈을 빌려줘선 수지 맞추기 어렵다 한다. 금융당국의 제안인지, 지침인지, 지시인지, 뭐라 말하기 애매한 ‘의중’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당국의 뜻은 제2금융권의 고금리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을 돕자는 데 있다.

 그 의도만큼은 순수해 보인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빚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새 은행 대출이 나오면 누가 최종적으로 웃겠나. 고금리로 대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던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다. 은행에서 대출 받아 제2금융권 빚을 갚는 대학생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새 대출이 일종의 환승론이 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은 쉽고 안전하게 고금리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그들의 리스크는 은행에 전가된다. 금융당국이 은행 돈으로 제2금융권 장사 시켜주는 꼴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내심 불편해한다. 금융이란 풍선과 같다. 한 군데를 누르면 어딘가가 튀어나온다. 수지가 맞지 않는 대출을 억지로 시킨다면, 은행들은 다른 뭔가를 얹거나 뺄 게 분명하다. 카드사들이 가맹점 수수료를 조금 낮췄다고 회원 혜택을 팍팍 없애는 걸 보지 않았나.

 물론 대학생들의 금리 부담을 다소 덜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빚은 여전히 남는다. 오히려 금리 부담이 준 만큼 대학생 대출은 더 늘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도 어긋난다. ‘상대적으로 싼’(절대적으론 결코 싸지 않다) 빚도 엄연히 빚이다. 고정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겐 독이다. 마치 몸 생각해준답시고 ‘유기농 독버섯’을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취업한 뒤에 갚도록 돼 있는 한국장학재단의 ‘든든학자금’ 수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게 낫다. 지금은 조건이 까다로워 일반대출에 의존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면, 은행들이 어정쩡한 대출 내놓느니 그 돈으로 재단 채권을 더 인수해 줄 수 있다.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등록금 마련하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대학생들의 사연은 참으로 딱하다. 이를 급히 돕는 것도 좋지만, 너무 성급해선 큰 효과가 없다. 대학 캠퍼스에 가보라. 다른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어디나 자동차 댈 데가 없을 정도로 차가 빼곡하다. 학생 전용주차장을 둔 대학들도 많다. 같은 대학생인데 누구는 차 몰고 다니고, 누구는 빚 얻으러 다닌다. 대학생들의 양극화는 그 정도로 심하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바로 이게 대학생 등록금 문제의 본질 아닌가 싶다. 또 대학교육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뚝 떨어진 것도 큰 원인이다. 대학이 돈 낸 만큼 값어치를 못한다고 비치는 한, 반값 주장은 수그러들 수가 없다.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대학 운영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맹성((猛省)해야 한다.

 그런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대학생에게 빚 얻어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다. 금융의 범주를 넘어 다각도의 정교하고도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그게 뭐냐고 따져 물으면 아무도 답을 할 수가 없다.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는 건 무책임하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단칼에 등록금을 반 토막 낼 수는 없다.

 결국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다. 정부, 지자체, 대학, 기업, 개인, 모두가 할 일이 있을 거다. 재정의 한계 내에서 장학제도를 확충하는 방법, 고등학교만 나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학력 차별을 없애는 길, 대학을 내실화하거나 구조조정하는 대책…. 지금 당장 고통 받고 있는 재학생들이 곧바로 혜택을 보지 못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은행 대출은 잠시의 진통제일 뿐이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