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가 울려퍼지자 신부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하염없는 눈물에 화장은 엉망이 됐다. 숙연해하던 150여 명의 하객은 노래가 끝나자 큰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눈물을 연신 닦던 신부는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28일 낮 전남 진도군 유스호스텔 강당. 성경 속 ‘모세의 기적’처럼 매년 봄 바닷길이 갈라지는 걸로 유명한 가계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탈북여성 김미옥(47)씨는 면사포를 썼다. 신랑은 진도 옆 인구 400여 명의 가사도 토박이인 장인종(52)씨. 늦깎이 혼례를 치른 이들은 3년 전 제주에서 처음 만났다.
함경도 출신인 신부 김씨는 배고픔에 시달리다 5년 전 중국으로 탈북했다. 하지만 강제북송돼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고 2008년 봄 다시 탈북해 한국행 꿈을 이뤘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동경해온 제주에 정착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부두와 식당 허드렛일은 탈북 과정에서 생긴 병 때문에 벅찼다. 그때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 신랑 장씨였다. 김씨는 “무뚝뚝하지만 날 정말 아껴주는 남자”라며 “제주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안을 와 챙겨주던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은 민주평통 전남지역 청년협의회와 진도협의회 측에서 마련했다. 피로연 비용을 포함한 300만원을 후원했다. 도움을 준 평통 전남지역 주영순 부의장 등 지역 유지들도 식장을 찾아 축하했다. 신랑 고향인 가사도에 정착키로 한 두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태호 평통 전남청년위원장은 “결혼식은 간소하더라도 웨딩드레스만은 꼭 입고 싶다는 신부를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고 귀띔했다.
식장을 나서던 신부에게 기자가 취재를 계속하자 신랑 장씨가 “아따, 뭘 그렇게 번잡스럽게 물어싸요”라며 막아섰다. 기자가 “탈북자인데 얼굴을 공개해도 되겠나”라고 걱정스러워하자 신부 김씨는 “이렇게 예쁘게 화장했으니 사진이 나가도 (북쪽 공안기관에서) 몰라볼 것”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이날 개관한 유스호스텔의 첫 손님이 된 부부는 VIP룸에서 첫날밤을 보낸 뒤 남해안을 일주하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진도=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