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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의 두 관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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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31면

이혼재판은 여느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되는 데 반해 이혼재판은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쟁점이 되므로 혼인생활 중에 일어났던 온갖 어두운 일이 줄줄이 드러난다.
학력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이기심·거짓·탐욕·비정함·독선 등 인간의 약점과 누추함이 드러나 재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는 당사자들 사이의 이혼재판을 하면서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지사에서 신혼생활을 보낸 부부가 귀국하게 되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시어머니가 국제전화로 시시콜콜 부부생활에 간섭했는데, 귀국하면 더 심해질 것 같아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이혼사유였다. 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남자가 곧장 이혼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재산과 학력 등 조건을 맞춰 결혼했는데 며칠 동안 지내 보니 도저히 평생을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왜 결혼하는지도 모르고 결혼한 것 같았다. 결혼은 누구나 해야 하는 생활의 방편일 뿐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연 결혼은 사람들이 맺는 관계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결혼생활에는 두 개의 관문이 있다. 첫째는 진실의 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 높이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쓴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쓰고 여기에 맞춰 행동한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서는 가면이 통하지 않는다. 생활하면서 성품과 결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록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부부만큼 진실만 통하는 인간관계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부야말로 가장 기초가 단단한 관계라고 하겠다.

그런데 성격·가치관·생활습관이 다른 사람끼리 가면을 벗은 채 부딪치다 보니 갈등이 생기게 된다. 심각할 정도로 충돌이 커지기도 한다. 이때 두 번째 관문이 나타난다. 사랑의 문이다. 이 문에 들어가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낭만적 사랑이 끝나고 현실적인 실제의 사랑이 요구된다. 가짜 사랑은 효력이 없고 진짜 사랑만이 통한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깊은 헌신과 인내가 핵심이다.

상대를 사랑하려면 자신의 에고(ego)가 깨어져야 한다. 인류 역사상 요즘처럼 자아가 커지고 에고가 중시되는 시대는 없는데, 이 속에서 참사랑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결혼 서약, 자녀 출산, 가정생활을 함께 경험하는 근본 공동체인 부부만이 자신을 깨뜨리는 사랑의 모험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진짜 사랑을 심으면 상대에게서 진짜 사랑이 나오고, 가짜를 심으면 가짜밖에 얻지 못하는 사실도 경험하게 된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사랑하는 부부는 자기도 모르게 성장하고, 서로의 숨은 상처까지 치유해 준다. 이처럼 부부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만, 한편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진실과 사랑의 험한 관문을 통과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결혼의 참의미다. 부부가 험한 인생을 함께하는 도반(道伴)이 되며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마음의 변화가 오는 것이 결혼의 신비다. 결혼은 생활의 차원을 넘어 깊은 영성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랑의 관문을 넘지 못하는 부부가 너무나 많은 듯하다. 이들은 사랑의 모험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서로에 대해 포기하고 체념한 채 빈약한 부부생활을 이어 갈 뿐이다. 부부 사이에 아무런 생기가 없고, 관계가 더 악화되면 이혼할 생각까지 한다. 그 원인은 부부가 결혼의 신비를 모르고 결혼생활에 대해 진실한 기대를 하지 않는 데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극심한 불화로 이혼을 하려던 후배가 4일짜리 부부관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완전히 변해 잉꼬부부가 됐다.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것이 변화의 핵심이었다.

삶의 근본 덕목인 진실과 사랑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부들이다.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오해는 결혼생활은 노력할 필요 없이 그대로 둬도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부부야말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진정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관계다. 우리 모두 결혼의 신비로 통하는 두 관문을 통과하면 좋겠다.



윤재윤 법이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소년자원보호자제도, 양형진술서제도 등을 창안하고 시행했다. 철우 언론법상을 받았으며 최근엔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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