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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파워스타일 ‘한경희 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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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47) 대표는 ‘전사형 CEO’가 아니었다. 전혀 ‘세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터뷰 때 실크 소재 블라우스에 허리 라인이 들어간 재킷,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격을 갖추면서 그렇다고 너무 강해 보이지 않는 게 맘에 들었단다. 함께 걸친 단아한 진주 귀고리와 목걸이 세트는 갑자기 차려입어야 할 때를 대비해 차에 두고 다는 ‘비상용 액세서리’다.

 그의 인생은 스팀청소기 하나로 달라졌다. 1999년 당시 한 대표는 5급 공무원의 평범한 직장맘이었다. 이전 10년간 IOC사무국 사무원, 호텔리어, 부동산 중개업 등을 거쳐 얻은 안정적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방바닥을 닦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했다. 순간 ‘쭈그리지 않고 걸레질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바람이 사업의 불씨를 지폈다. 순탄치는 않았다. 제품 개발이 4년이나 걸린 탓에 친정과 시댁 집문서까지 저당 잡혔다. 하지만 일단 출시되자 국내에서 700만 대가 팔리는 대박 상품이 됐다. 그 자신도 ‘주목해야 할 여성 CEO 50인(2008년 월스트리트 저널)’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서밋(2009년 포춘)’ 등에 잇따라 선정됐다.

 성공 비결을 물었더니 한마디로 ‘생활의 발견’이란다. 최근 내놓은 진동 파운데이션, 진드기 없애주는 침구 살균기도 일상 속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요즘엔 아예 150여 명 전 직원을 아이디어 창구로 삼는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싱크 타임(think time)’을 갖는 것. 모두가 업무를 멈추고 내부 인터넷망에 접속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달의 베스트에겐 백화점 상품권 50만원을, 제품으로 나오면 1년간 영업이익의 3%를 당사자에게 준다.

 그가 지갑을 여는 대상도 옷·구두보다 색다른 생활용품들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① 대표적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가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을까 걱정하기 마련. 3년 전 이 제품을 보고 이렇게 단순한 발상으로 소비자의 정곡을 꿰뚫을 수 있구나 감탄했다. 영국 브랜드 ‘조셉조셉’의 요리도구 ② 도 마찬가지다. 음식할 때마다 국자·뒤집개를 싱크대 위에 그냥 둘 수 없었던 터라 올 초 이 제품을 보고 당장 사들였다. 두 아들을 위한 선물도 남다르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아들들을 생각하며 직접 만화책 ③ 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엉뚱하게 내뱉은 말들, 엄마를 감동시킨 에피소드를 꼼꼼히 기록해놨다.

 한경희라는 이름은 이제 해외에서도 통한다. 2006년, 2008년에 만든 중국·미국 법인명이 ‘HAAN’이다. 연 매출은 각각 200억·300억원으로 승승장구 중. 대운이 든 이름일까. “어렸을 땐 너무 흔해 싫었어요. 그런데 한경희(韓京姬) 한자를 풀면 ‘한국의 서울 여자’더라고요. 수출 많이 하라는 계시인가 봐요.”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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