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자본·北 인력 합치면 윈·윈경제 실현될 것"

중앙일보

입력

13일 오전 9시40분. 비행기가 뜬 지 10분쯤 지났을까, 지금 38선을 넘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창밖을 보니 서해안을 따라 섬과 육지가 보였다. 농지정리가 잘돼 있고, 모내기 하는 농부도 눈에 띄었다.

문득 36년 전 중부전선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복무할 때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휴전선이 아닌 압록강이나 두만강에서 국경을 지키고 싶다' 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북한에 처음 가지만 다른 탑승자도 긴장하고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이 이렇게 가까운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야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순안공항에 마중나온 북한 사람들이 손에 손에 들고 있던 꽃이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창밖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였다. 충격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벤츠가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3일 동안 줄곧 2인 1조로 움직였는데 나는 시인 고은 선생과 한조였다. 안내원은 매우 친절했고 '孫부회장님' 이란 호칭을 썼다.

북한은 우리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박동근 조국통일연구원 참사는 김재철 무역협회장을 만나자 "金회장이 쓰신 '바다' 라는 글을 교과서에서 잘 읽었습니다" 라고 인사해 우리 모두 놀랐다.

엄청난 환영인파에서 통일 열기를 느꼈다. 나도 차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30여분 동안 계속 손을 흔들었다. 나중엔 팔이 아파왔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20만명은 될 것' 이라고 했다.

나중에 초대소에서 들으니 60만명으로 공식 발표됐다고 했다.

한 북한 인사는 "카스트로.시아누크가 왔을 때보다 더 많았다" 며 "그때는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모두 울었다" 고 말했다.

주암산 초대소에 도착하니 모란봉.대동강.부벽루.능라도.을밀대 등 말로만 듣던 명소가 한눈에 보였다. 오후에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공연단에게 준 꽃바구니에 달린 리본에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내외' 라고 쓰인 것이 눈길을 끌었다. '대한민국' 이란 국호를 북한에서 쓸 수 있다니….

이튿날(14일)아침엔 고은 시인.강만길 교수와 함께 을밀대를 산책했다.

손길승 SK회장은 기(氣)체조를 했다. 이날은 동명왕릉에 가기로 돼있었는데 기업인들은 대신 경제현장을 방문했다.

콤퓨터센터에서 음성.문자 인식 시스템, 3백여종이나 개발한 서체, 남북 농구시합을 컴퓨터로 분석한 것 등을 보고 '여기도 경제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닭 공장(봉화협동농장)에선 계란→병아리→닭→계란으로 이어지는 자동 사육시스템이 마치 일관 생산공장에 온 것 같았다.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먹은 평양냉면은 원조답게 맛있어서 단숨에 두그릇을 먹었다. 오후엔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 경제인 모임을 가졌다. 우린 사전에 준비를 못했는데 북측은 인사말까지 써왔다.

'그간의 민간교류는 시험에 불과했다. 통일적 발전을 위해선 이런 비정상 상태가 지속돼서는 곤란하다. 협력에 필요한 것은 다 말해 달라' 는 요지였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 우리도 할 말을 다했다. 제도정비를 선행해야 마음놓고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더니 '적극 노력하겠다' 고 답변했다.

저녁 7시로 잡힌 만찬이 정상회담이 길어지며 늦어졌다.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며 걱정했는데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왔고 모두 환호했다. 밤 10시 무렵 숙소로 돌아와 다시 파티를 했다. 다들 오늘같이 기쁜 날 그냥 잘 수는 없다는 분위기였다.

초대소에서 준비한 골뱅이.야채 안주로 구본무 LG회장이 가져온 양주 2병을 비웠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측이 방마다 냉장고에 가득 넣어준 술을 꺼내와 마셨다.

각자 돌아가며 소감을 말했다. 강만길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역사의 현장에 있으니 감개무량하다" 고 말했고 우리 모두 공감했다. 새벽 2시에 잔 뒤 3시간 뒤인 5시에 깼는데 피곤한 줄 몰랐다.

김정일 위원장이 나온 마지막날 오찬에서 참석자 모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합창했다. 金위원장은 위트.유머가 대단하고 예절도 밝았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을 수행한 경제인들은 대동강변에서 '경협에 최선을 다하자' 고 굳게 다짐했다. 우리는 이를 지킬 것이다.

정부.기업.국민이 한마음으로 북한과 협력하면 우리 민족에게 큰 기회가 올 것이다.

남한의 기술.자본, 북한의 우수인력을 결합하면 못할 게 없고 그게 바로 윈.윈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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