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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범람.. 시네마테크를 키워라

중앙일보

입력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영화제와 비교해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 "

전주지역 시민단체인 '시민행동 21 문화센터'는 지난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열린 제1회 전주영화제 기간 중 설문 조사를 했다.

극장을 찾은 관람객 1천3백47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정도(47%)가 전주영화제가 특색이 없다고 답했던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의 하나는 크고 작은 영화제의 '범람'이다. 독립영화제나 단편영화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같은 소규모에서부터 부산.부천.전주 등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된 큰 규모의 국제영화제까지 다양하다.

특히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얼마전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아시아 최고의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자타가 성공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올해 5회를 맞는 이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중 외국인을 포함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유료 관객이 20만명에 달해 도시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지역 경제면에서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이에 고무돼 시(市)에서는 최근 부산을 영상산업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올해 전주에서 영화제를 신설하고 울산 등 다른 지자체들이 영화제 개최를 검토 중인 데는 부산에서의 성공이 큰 자극이 됐다.

영화제는 일반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유명 작품이나 화제작을 소개함으로써 영화학도나 시민관객들에게 세계 영화의 흐름과 수준을 읽을 수 있게 도와 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

그러나 전주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에서 보듯 "비슷한 성격의 국제영화제를 경쟁적으로 열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일고 있다.

한 평론가는 "국제영화제는 젊은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고 시민들도 접근하기 쉽기때문에 지자체들이 문화행정을 편다고 생색을 내기에 가장 좋은 사업인 것 같다. 하지만 별 개성없는 영화제를 위해 매년 수십억원씩 쓰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현재 3개 국제영화제가 매년 쓰는 돈은 각각 20억원선. 부산의 경우 시 예산에서 5억, 문화관광부 지원액 7억, 기업체 후원 등이 포함돼 있다. 부천도 문화부 지원액 5억을 포함해 비슷한 수준이다. 한 해 60억원씩 붓는 만큼 한국 영화의 발전에 이들 영화제가 도움이 되는 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최근 스위스에서 한국영화 회고전을 유치했던 프로그래머 임안자씨 "유럽에서 한국영화를 그나마 활발히 소개하는 곳은 큰 도시마다 산재한 시네마테크다" 라며 "한국에도 시네마테크가 세워진다면 괜찮은 외국 영화를 상시적으로 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9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중의 영화제' 로 불린다. 칸.베를린.베니스 등 그 해 유명 영화제에서 평가받은 작품과, 평론가들이 추천한 작품 약 3백편을 상영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년간 나온 웬만한 수작들은 다 모아놓은 이 비경쟁 영화제를 주최하는 곳은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다.

토론토 시와 문화관련 부처, 기업및 개인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이 곳은 평소엔 영화사의 걸작이나 저명한 감독들의 영화 주간을 개최하는 등 '영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시네마테크가 운영을 맡다보니 영화제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면서 요란스럽지 않게 관객 위주로 행사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부산에도 시네마테크가 있다. 시의 위탁을 받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8월 문을 연 이 곳은 시네마테크라고 하기엔 굉장히 궁색하다.

그 동안 상영한 작품 중 눈에 띄는 거라곤 '이란영화 특별전' '20세기가 가기 전에 보아야 할 클래식 필름9' 정도다. 1백60석짜리 객석은 거의 텅텅 빈다.

시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2억7천만원. 상근직원의 인건비를 제하면 다른 사업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영화제 내부에서조차 "부산시가 워낙 관료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마음 먹은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 며 불만을 터뜨린다.

한 평론가는 "문화부와 지자체가 영화제에 쏟는 예산 중 10분의 1인 6, 7억원만 돌리더라도 훌륭한 시네마테크의 설립및 운영이 가능하다" 며 "국제영화제처럼 이목을 끌 수 있는 이벤트성 행사에만 관심을 둘 게 아니라 영화 문화의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상시적인 시네마테크를 하루 빨리 키워내야 한다" 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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