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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사지 마라!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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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 #1. 상상도 못했다. 100억원짜리 빌딩이 골칫거리가 될 줄은. 김모(65)씨는 평생 모은 돈을 몽땅 털어 지난해 서울 교대역 근처에 5층 빌딩을 샀다.

빌딩 값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임대료만 받아도 노후 생활은 걱정 없으려니 했다. 강남 ‘빌딩 오너’로 신분이 격상된 듯한 마음도 들었다.

딱 두 달이었다.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유난히 골프가 잘 되는 봄날이었다. 결정적 샷을 날리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1층에 세 든 호프집 사장이었다. “수도관이 터졌어요. 빨리 와서 고쳐줘요.” 김씨는 라운드를 서둘러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월세 들어오는 날도 마냥 즐겁진 않았다. 3층에 세 든 한 중소기업의 사장은 월세 날을 맞춘 적이 없었다. 한 달을 봐 줬는데 한 달만 더 봐달라며 떼를 썼다. 내쫓을 수도 없고, 속만 끓였다. 김씨는 최근 건물을 팔기로 마음먹고 매물로 내놨다.

#2. 지난해 12월 2일, 하나은행은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을 상대로 펀드 가입 예약을 받았다. 최소 가입 금액 1억원, 5년 만기에 중도 해지가 불가능한 폐쇄형인데도 주문이 쏟아졌다. 10억원 뭉칫돈을 넣는 이도 있었다. 이튿날 800억원 한도를 다 채웠다.

다올자산운용이 내놓은 ‘다올랜드칩부동산투자신탁1호’ 얘기다. 다올운용은 서울 여의도의 하나대투증권 사옥을 2870억원에 사들였다. 1300억원은 금융회사 대출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펀드를 만들어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았다.

이 빌딩에는 하나대투증권을 비롯, 1층에 스타벅스가 들어와 있다. 인텔이나 3M 등과 같은 외국계 회사의 한국 법인도 있다. 빈 사무실이 거의 없다. 임대료 수익이 확실하다는 의미다.

펀드의 목표 수익률은 연 6.5%. 분기마다 이자가 지급된다. 1억원을 넣으면 3개월마다 약 163만원(세금 제외)이 나온다는 의미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4.9%로, 지금까지 목표한 수익률을 잘 달성하고 있다.

직접 관리 쉽지 않아

부동산 시장이 침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이들은 대출금 갚느라 허리가 휜다. ‘하우스 푸어’ 신세다. 그래서 요즘 뜨는 게 수익형 부동산이다.

특히 매달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임대형 부동산이 인기다.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단지 내 상가, 소형 연립, 다가구주택 등에 관심이 쏠린다. 반대로 매매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전세(傳貰) 품귀 현상이 그 증거다. 전셋값이 뛰어도 집을 사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매 차익을 노리는 투자를 했던 까닭에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은 직접투자 중심이었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아직 낯설다. 임대 수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에서도 직접투자가 대세였다.

앞서 김씨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그런데 김씨가 100억원짜리 빌딩을 살 게 아니라 다올운용의 펀드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골치 썩지 않고 매달 5410만원꼴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PS자산운용 조갑주 부사장은 “빌딩을 직접 사서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임대형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면 이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50억원이 있어도 살 수 있는 빌딩은 한정돼 있다.

이면 도로에 있는 B급·C급 빌딩이다. 세(貰)가 모두 나가리라 기대하기 힘들다. 세 든 사람(사업자)이 속을 썩이는 경우도 많다. 식당이나 호프집·노래방 같은 영세상인이 대부분이다. 화장실이 막혔거나 수도관이 터지면 빌딩 주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

펀트 투자 리스크 줄어

펀드에 투자하면 다르다. 수천억원짜리 프라임급이나 A급 빌딩을 사는 효과를 얻는다. 이런 빌딩은 대로변에 위치해 세도 잘 나간다. 입주사도 은행·증권·보험사 등의 지점이나 대기업 계열사,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 등이다. 빌딩 관리나 법률 문제, 기계설비·보수 등도 운용사가 알아서 한다.

관리가 잘 되니 임대료가 비싸고, 임대료가 비싸니 빌딩 가치가 올라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다. 빌딩 오너라는 기쁨은 맛볼 수 없다. 투자한 만큼의 펀드 지분이 있을 뿐이다. 빌딩은 팔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실리만을 따진다면 임대형 부동산 펀드 쪽이 낫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문제는 부동산 펀드에 대한 거부감이다. 한 증권사의 강남지역 PB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워낙 데어서인지 고객들에게 부동산 펀드의 ‘부’자만 꺼내도 기겁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파트 개발사업을 하는 시행사에 돈을 빌려줬던 ‘대출형’ 부동산 펀드는 분양이 차질을 빚으면서 원금을 까먹기도 했다. 2006년 인기몰이를 했던 글로벌리츠재간접펀드나 일본리츠재간접펀드는 5년 수익률이 -50%에 이른다.

그러나 ‘임대형’ 부동산 펀드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출시된 것들이 투자자에게 무리 없이 안정적 수익을 안겨줬다. 수요가 늘면서 신상품도 잇따라 선보인다. PS자산운용은 다음 달 명동에 2500억원, 분당에 1500억원짜리 빌딩을 사서 임대 수익을 올리는 임대형 부동산 펀드 두 건을 내놓는다.

증권사 PB 지점을 통해 개인 돈 200억~300억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현대증권은 이르면 내년, 천안아산 KTX 역사를 자산으로 하는 연 7% 수익 목표의 임대형 부동산 펀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역사는 한 대형마트와 20년 장기 임대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펀드에 투자할 때도 빌딩을 살 때처럼 발품을 팔아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용사가 제대로 된 곳인지, 펀드매니저의 투자 성과는 어떤지, 펀드에 같이 투자한 기관은 어디인지, 투자한 빌딩이 현재 임대가 잘 나가고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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