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유럽정상회의 ‘헤어컷’ 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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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가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장 클로드 트리셰(오른쪽)와 벨기에 총리 이브 르테름(왼쪽)과 위기대책(그랜드 플랜)을 논의하고 있다. 메르켈과 트리셰는 ECB가 구제금융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에 반대했다. [브뤼셀 블룸버그=연합뉴스]

D-데이가 하루 남짓 남았다. 내일이면 유럽위기 대책(그랜드 플랜)이 발표된다. 글로벌 시장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56) 프랑스 대통령, 장 클로드 트리셰(67)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어깨가 무겁다. 그들은 마감을 한 차례 어겼다. 애초 21일 그랜드 플랜을 내놓겠다고 했었다.

 그랜드 플랜 얼개는 맞춰졌다. 그리스 채권 은행들이 고통을 분담하면 유로존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동원해 시중 은행들의 구멍 난 자본을 확충해준다. 이를 위해 유로존은 화력(EFSF)을 더 보강한다. 셋은 서로 맞물려 있다. 메르켈·사르코지·트리셰는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메르켈은 “그리스의 긴축이 지속 가능하도록 채권자들이 원리금을 최대한 탕감(헤어컷)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 쪽은 60%(7월 구제안에선 21%) 정도를 제시했다. 빚을 최대한 깎아줘 그리스가 되살아나도록 하자는 얘기다.

 사르코지는 발끈했다. 메르켈안을 따르면 그리스의 최대 채권자인 프랑스 시중은행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24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시중은행들의 피해가 1080억 유로(약 170조6400억원)에 이를 듯하다”고 보도했다. 사르코지는 “ECB가 EFSF 증액에 참여하면 헤어컷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응수했다. ECB가 찍어낸 유로화로 EFSF를 증액하자는 제안이다. 사르코지는 EFSF의 늘어난 돈으로 자국 은행들의 구멍 난 자본을 메울 요량이다.

 사르코지 안에 대해선 ECB 총재인 트리셰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인쇄기를 돌려 유로화를 찍어내 구제금융과 자본 확충에 쓰면 돈 가치가 떨어진다”고 되받아쳤다. 사실상 결정권을 쥐게 된 메르켈이 트리셰의 손을 들어줬다. 블룸버그 통신은 협상 관계자의 말을 빌려 “ECB가 EFSF 증액에 참여하지 않기로 의견 접근을 봤다”고 이날 전했다.

 ECB가 돕지 않으면 유로존 스스로 EFSF를 2조 유로(약 3160조원)로 증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외부 수혈을 받아야 한다. 메르켈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F는 회원국의 출자에 의존한다. 중국·브라질 등의 출자 증액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됐다. 두 나라 추가 출자는 또 다른 파장을 낳는다. IMF 지분구조의 변동이다. 여차하면 글로벌 금융서열이 흔들린다. 미국이 달가워하지 않을 게 뻔하다.

 찰스 디벨 영국 로이드은행 투자전략 책임자는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 리더들이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 그랜드 플랜을 내놓기는 할 것”이라며 “하지만 내용이 이름처럼 ‘그랜드’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중·일 주가는 그랜드 플랜 기대감에 1~3% 정도 올랐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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