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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한·미 FTA 비준, 사저 국정조사 모두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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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1953년 6월 어느 날 미국에서 평범한 중산층이 타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한 대가 지붕에 여행가방 꾸러미를 싣고 미주리주 인디펜던트시를 떠나 동부로 향했다. 노부부는 길가 레스토랑에서 과일 한 접시로 점심을 하고 아이스 티로 목을 축이고, 5달러짜리 모텔에 들었다. 저녁은 70센트짜리 닭 튀김을 시켰다. 식당 주인은 물론 주유소 종업원들도 그들이 6개월 전에 퇴임한 트루먼 대통령 부부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퇴임 후 첫 여름, 전직 대통령 부부는 직접 차를 몰며 뉴욕으로 가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가는 도중 친구 집에 들러 피아노를 치며 즐거운 밤을 보내기도 했고, 어느 날은 그들을 알아본 식당 요리사가 동네 사람을 불러와 소란스러운 밤을 겪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 턴 파이크 고속도로에서는 규정 속도보다 늦게 간다고 교통 순경한테 딱지를 받기도 했다. 당시는 퇴임 후 경호도 없었고 전직에 대한 예우도 없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라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거부했다. 그가 받은 것은 고작 월 112달러의 육군 연금뿐이었다. 물론 그때도 여러 개인회사들이 그에게 고문직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것이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58년 그는 생계를 위해 가족 농장까지 팔았다. 그해 말에야 미 의회는 전직 대통령 예우법을 만들었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미 의회에서 훌륭한 연설을 했다. 그가 6·25에 참전했던 미 하원의원들 좌석을 찾아가 거수경례를 하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미국 병사들의 목숨을 건 희생의 대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는 자랑스러운 신고요, 감사의 표시였다. 미국 의회는 우리 대통령에게 큰 박수를 아낌없이 쳐주었다. 그런 대통령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퇴임 후 지낼 내곡동 사저 의혹이 방미 기간 중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경호처 땅과 개인 땅을 뒤섞어 구입했다는 의혹, 그린벨트 지역만 골랐다는 뒷얘기, 논현동 사저 공시가격 축소 의혹 등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밖에서는 갈채를 받으면서 왜 개인 재산 문제에서는 이런 식으로 처신을 했을까. 더욱이 그는 이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까지 했는데…안타까운 일이었다. 지난날, 퇴임 후를 위해 몇천억씩을 챙겼던 우리 대통령들이 떠오르며 동시에 트루먼 대통령이 생각난 것이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대통령이 없을까.

 우리가 바라는 공직자는 그 직책 자체를 명예로 아는 사람이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거나 희생이 되더라도 공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람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으로, 희생까지는 못 하더라도 공인으로서 바른 처신을 해 주기를 우리는 바란다. “밥 짓는 사람이 누룽지 좀 긁어 먹었다고 뭐가 그리 잘못됐느냐”는 식의 생각은 안이하고 무감각한 태도다. 선거를 통해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익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공직을 사익 추구의 방편으로 이용하거나,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섞어 적당히 처리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이념 대립이다. 모든 사안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다. 현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이념이라는 안경을 통해 보려고 한다. 모든 이슈가 이념 노선으로 딱 갈라진다. 그러니 어떤 문제든 진보나 보수가 내놓을 답은 미리 정해져 있다. 언제나 정반대의 주장이 전개된다. 그러나 이념을 넘어서는 사안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공직의 윤리다. 각자가 무슨 이념을 가졌든 간에 공직에 대한 윤리의식만은 일치돼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나라가 ‘도둑의 소굴’로 타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명제는 ‘나라가 부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우리 모두는 더 잘살게 되기를 바란다. 복지를 확대하려 해도 나라가 더 잘살아야 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려 해도 나라가 더 잘살게 되어야 한다. 국민이나 나라가 가난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미FTA를 이념의 눈으로 보면 친미, 반미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경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다. 만일 한·일, 한·중 FTA도 우리의 경제 영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체결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실용적인 자세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 비준과 대통령 사저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동시에 실시돼야 한다. 이를 놓고 여야가, 진보와 보수가 갈라져 싸울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이념을 떠난 우리의 실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역시 의혹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 기회에 국정조사를 자청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퇴임 후에 다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