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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인이 집을 지었다, 아내에게 석양을 보여주고 싶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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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당신을 위해 지은 집
함성호 지음
마음의 숲, 284쪽
1만2800원

콘크리트 도시에서 성냥갑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도시인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굳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집에 대한 갈증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낭만적인 공간, ‘나’의 정체성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 우리 아이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 그러나 치솟는 전세금에, 불어나는 대출이자를 생각하면 내 몸에 딱 맞는 집 짓기는 애초에 희망리스트 마지막쯤으로 미뤄둔 지 오래일 거다.

 그러나 여기 ‘이상한 의뢰인’이 있다.

 “땅 사는 것부터 설계, 시공, 임대까지 모두 다 해주세요”

 땅도 없고 시공비, 설계비도 없는 사람이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계획은 알아서 하고, 돈이 없으면 직접 대출을 받아서까지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왜?’라고 속으로 반문하지만 건축가는 결국 집을 짓는다. 의뢰인은 그의 아내였다.

 이 책은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아내를 위해 지은 집, 장애를 가진 딸을 위해 아버지가 의뢰한 집 등에 관한 얘기다.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집 옥탑에서는 산으로 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아내가 옥탑에서 본 자연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옆에서 같이 본 풍경이더라도 그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에 늘 들어도 좋았다’고 하는 그의 사랑을 담아낸 곳이다.

 또 아버지의 “너무 위험합니다”라는 말 때문에 설계를 수십 번 수정하면서 한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집을 짓는다. 정원 대신 너른 마당으로 바꾸면서 몸은 불편하더라도 영혼은 자유롭게 놀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낸 곳이다.

 이쯤 되면 집에 대한 로망이 슬그머니 되살아난다. ‘집에는 항상 당신이 있어야 하고, 집은 항상 당신을 위해 지어진다. 좋은 집은 꼭 당신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건축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여행·철학·사랑·문학 등 저자의 다양한 관심과 활동 분야가 반영돼 삶과 자연에 대한 세밀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담긴 에세이로 가득하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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