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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국민배우 - 야쿠쇼 코지

중앙일보

입력

지극히 평범한 중년 샐러리맨 '스기야마'는 퇴근길 전철의 창문너머로 본 아름다운 여인, '마이'의 춤추는 모습에 반하지만 차마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인물이다. 어느날 용기를 내어 그녀가 춤추던 댄스교습소를 찾는 '스기야마'. 그는 단지 '마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사교댄스를 시작하지만 점차 댄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를 부담스러워 하던 '마이'도 차츰 마음을 열고 그가 도쿄 댄스대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역대 일본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Shall we ダンス?)〉는 한동안 일본열도에 '사교댄스 붐'을 몰고 오기도 했던 작품. 뿐만 아니라 일본 아카데미상의 외국 영화상을 제외한 13개 부문상을 싹쓸이 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쉘 위 댄스〉가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둔 첫번째 이유는 오늘날 일본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따뜻하게 담아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다케나카 나오토'와 일본 발레계의 프리마돈나 '쿠사카리 타미요'등 빛나는 개성파 조연들의 열연,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민배우라 불리는 '야쿠쇼 코지(役所廣司)'의 매력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평범한 샐러리맨 '스기야마'로 등장해 열연한 '야쿠쇼 코지'는 '다카구라 겐'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배우이자 9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최근 개봉된 〈쉘 위 댄스〉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그의 매력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지금이야 최고의 스타로 대접 받고 있지만 그에게 스타덤은 아주 더디게 찾아왔다. 다시 말해 그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배우다. 56년 1월 1일 일본 나가사키 현에서 태어난 '야쿠쇼 코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 치요다 구청 토목부 서기로 4년간 근무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어느날 '나카다이 다츠야'(영화〈가케무샤〉주인공)의 연극 〈밤주막(どん底)〉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 이후 '나카다이 다츠야'가 운영하는 극단 무메이주쿠에 들어가 연기자 '야쿠쇼 코지'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예명인 '야쿠쇼'도 자신이 근무했던 구청(區役所/구야쿠쇼)에서 따왔다.

78년 연극〈외디푸스 왕〉으로 데뷔한 그는 자신의 활동영역을 연극에서 TV로 넓혔다. 80년 NHK 아침드라마 〈낫짱의 사진관(なっちゃんの寫眞館)〉을 시작으로 83년 NHK 대하 드라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河家康)〉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역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어 출연한〈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에선 주연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은 85년 '이타미 주조' 감독의 '라면 웨스턴 코믹 질주극'이라 불리는〈담포포(タンポポ)〉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 이 작품에서 그는 탁월한 미식가이자 잘 나가는 야쿠자 두목을 연기해 두각을 나타냈다. 87년 '모리자키 아즈마' 감독의 〈여자 꽃 피워 드립니다(女 かせます)〉에서 여자 도둑인 '마쓰자카 게이코'에게 반한 가난한 첼로 연주자역을 맡아 선량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열연했다.

88년 '니시무라 게타로'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Another way-D 기관정보(アナザ-ウェイ-D 機關情報)〉에선 영화데뷔 후 첫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90년 마침내 〈오로라의 아래에서(オ-ロラの下で)〉로 일본아카데미상 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93년 '와타나베' 감독의 〈홍련화(紅蓮華)〉에서 전후(戰後) 니힐리스트적인 장남역을 맡아 자가당착에 빠져 파멸해 가는 인물을 연기해 큰 호평을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94년 '마바 요시히로' 감독의 〈극동 검은 사회(極東黑社會)〉에선 홍콩 마피아를 상대로 권총을 들이대는 와일드한 수사관으로 등장, 헐리웃 일본계 스타 '쇼 고스기'와 함께 공연했다. 뿐만 아니라 '호소노 다쓰오키' 감독의 액션영화 〈오사카 극도 전쟁, 참아라(大阪極道戰爭, しのいだれ)〉에 출연, 액션배우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과시했다. 이후〈가미가제 택시(Kamikaze Taxi)〉를 거쳐 96년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로 전성기를 맞이한 '야쿠쇼 코지'는 한국의 '안성기'와 공연해 화제를 모았던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잠자는 남자(眠る男)〉와 〈오사카 극도 전쟁, 참아라〉에서 호흡을 맞췄던 '호소노 다쓰오키' 감독의 〈마약극도(シャブ極道)〉에 출연함으로써 그 해 일본의 모든 영화상을 모두 휩쓸었다.

97년은 생애 최고의 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うなぎ)〉와 그 해 일본 최고의 흥행작인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실낙원(失樂園)〉, 그리고 그에게 동경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CURE)〉에 출연하면서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했다. 지난해엔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흥행작〈금융부식열도(金融腐食列島. 呪縛)〉에 출연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사회 비판적인 작품.

'야쿠쇼 코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스타이자〈우나기〉에서 〈실락원〉까지 이른바 작가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우이다. 너무 평범해 별 개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다지 카리스마가 없어 보이는 '안성기'나 '제임스 스튜어트'가 오랜 세월 그 나라 영화를 상징하는 얼굴이 돼왔듯, '야쿠쇼 코지' 역시 성실한 연기와 부드러운 이미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배우가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 너무 개성이 강한 배우는 다양한 연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백지 같을 때 가능성이 더 커지겠지요."- 야쿠쇼 코지-

※필자 조은성씨는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조감독, EBS 교육방송 〈시네마 천국〉구성작가를 거쳐 나우누리 영화 동호회 〈빛그림 시네마〉시삽, 잡지사 기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PD와 영화 컨텐츠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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