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가쟁명:유주열] 서복(徐福)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상반기에 중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이제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遊客)”는 쇼핑관광에서 스토리 텔링 관광으로 바뀌고 있다. 그들은 옛날 서복(徐福)의 전설을 따라 중국 동쪽 삼신산(三神山)이 있다는 한국을 찾아 오고 있다. 서복은 전국시대 천문지리가인 방사(方士)로 병법가 손빈, 합종연횡가 소진 장의과 함께 귀곡(鬼谷)선생의 수제자였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는 허탈해졌다. 자신이 늙지 않고 오래사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진시황은 서복을 시켜 동쪽의 바다 건너 삼신산에 가서 불로장생 영약을 구해 오도록 동남동녀 수천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나게 하였다.

서복은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그리고 영주산(한라산)이있는 한반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반도 서남쪽에서 가장 높은 방장산 즉 지리산으로 갔다. 서복이 지리산에 들어가 산삼을 세 뿌리를 캐 가지고 나왔다. 마침 그 곳의 진국(震國)의 왕이 죽게 되었는데 서복의 산삼을 얻어 먹고 오래 살았다고 한다.

진시황이 구하고자 한 불로초는 바로 산삼이었는지 모른다. 인삼의 옛 이름이 “심”인데 지금도 심마니가 가장 많은 곳이 지리산이다. 서복은 산삼의 효능은 확인하고 동남동녀 일부를 지리산에 남겨 인삼을 재배케 하고 자신은 다시 배를 띄워 영주산을 찾아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의 한라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제주섬은 그야말로 평원광택(平原廣澤)이었다. 서복은 작은 머루알같은 시로미와 영지버섯을 채취하여 남으로 내려왔다. 제주도의 정방폭포의 석벽에는 서복이 지나갔다는 글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제주의 서귀포(西歸浦)는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 갔다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서귀포의 서복전시관에는 제주도에서의 서복의 행적을 전하고 있다.

일본의 가고시마 인근에 관산(冠山)이라는 지명이 있다. 서복이 관(冠)을 걸어두고 떠난 곳이란다. 그리고 일본 와까야마현의 신궁시(新宮市)에는 서복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곳 사람들은 일본에서 죽은 서복의 무덤을 만들고 그곳을 서복공원을 하였다.

중국관광객을 끌기 위해 한·일 두 나라는 서복을 상품화하고 있다. 그러나 서복의 스토리가 가장 많이 남아 있고 진시황은 구하지 못해 장수를 못했지만 서복이 찾고 있었던 불로초 인삼이 산출되는 한국에 서복의 후예들이 몰려 오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