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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인간밀수 루트의 중간 경유지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방글라데시에서 가구 제조로 한 달에 겨우 1백 달러 남짓 벌던 수닐 몬달(39)
은 외국 노동자들이 일본에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우선 그는 인도로 가서 공연차 서울에 입국하는 악극단에 합류했다.

그후 한국의 철강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중국 범죄조직과 연계된 방글라데시 중개인의 도움으로 중국인과 네팔인들에 섞여 일본행 화물선에 올랐다. 이틀 후 그들은 무사히 일본에 닿았고 몬달은 안내자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는 “그들이 중국인이었는지 한국인이었지 모르겠다. 그 때는 어두웠고 거기가 일본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도쿄(東京)
까지 1만 달러가 들었다.

사실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 지하 노동 시장에 불법으로 들어간 것치고는 싸게 치른 편이다. 일명 ‘뱀머리’로 불리는 외국인 밀입국 중개인들은 화물선이나 어선을 통해 일본에 입국시켜준 대가로 2만5천 달러 이상을 요구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그 금액을 도착 직후 지불하거나 차후에 돈을 벌어 갚아나간다. 노동자 밀입국은 일본에서 공사 현장 및 영세 공장의 미숙련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1990년대 중반부터 급증했다. 불법 이민자들은 해안에서 배회하거나 작은 숨구멍만 뚫은 화물 컨테이너 또는 허름한 트롤선의 생선 저장고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된다.

지난 5년간 일본 당국은 약 2백 척의 선박과 중국인이 대부분인 4천 명의 불법 이민자를 체포했다. 한 고위 경찰 간부는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 밀입국자 수는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일본 해안 경찰은 요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9년 초 휴양섬 에노시마(江ノ島)
인근에 표류하던 한국 낚싯배 한 척이 발견됐다. 갑판에는 한국인 선원이 3명 있었고 갑판 밑에는 53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지난 1월에는 중국 푸젠(福建)
省 사람 6명이 생선 화물선을 타고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후쿠오카(福岡)
부근에서 붙들렸다.

중국 푸젠省에서 인간 밀수가 시작된 것은 10년도 넘었다. 처음에 뱀머리들은 자국인들을 미국으로 밀항시켰다. 이후 미국에서 단속이 강화되자 요즘은 캐나다·호주 등으로의 밀항이 성행하고 있다. 일본을 목적지로 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을 거쳐 화물선으로 갈아타고 일본으로 향한다.

중국의 뱀머리들은 수송에는 한국인을, 서류 위조에는 태국인을 고용하기도 하며, 일본에서의 수송·은신처 마련 등에는 야쿠자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일본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대개 이자까지 붙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영세 공장이나 윤락가·중국 식당에서 일해야 한다. 뱀머리들은 직업을 알선하고 위장 결혼을 주선하며 위조 여권과 비자를 거래한다.

최근 일본에는 뱀머리들이나 불법 이민자들이 관련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은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주택 지역에 강도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항구도시 요코하마(橫濱)
에서 만다린語를 할 줄 하는 경찰들은 푸젠 방언 강좌를 듣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는 자명하다. 바로 “일본으로 데려가달라”가 아니겠는가. [뉴스위크=Hideko Takayam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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