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빨강·초록·보라 … 채소 양껏 먹어야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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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은 BC 300년 전인 신석기 후기부터 채소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흉년이 든 것을 기근이라 하는데 이 중 기(飢)는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이 원인인 굶주림, 근(饉)은 채소가 자라지 않아 생긴 굶주림을 뜻한다. 곡식 못지않게 채소를 중시한 것이다.

 과거엔 사대부들도 채소를 가꿨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엔 “오이·가지·아욱·무·파·박 등 여섯 가지 채소를 채마밭에 심어 가꾼다”는 내용이 있다. 채소를 즐긴 것은 부족한 곡류를 보충하고, 채소의 독특한 풍미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

 채소가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고 육류를 식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채식(곡류·채소·과일 등 식물성 식품)과 육식(육류·생선 등 동물성 식품)을 8 대 2의 ‘황금비율’로 섭취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최선의 식사법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채소 섭취량은 지난 40년간 큰 변동이 없다. 문제는 전체 식탁에서 채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1969년엔 97%가 식물성 식품이었다. 당시엔 푸성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나 다름없었다. 그후 육류 섭취가 늘면서 80%대를 유지하다 2009년 조사(79.6%)에선 80%대 벽이 무너졌다. 아직 채식 비율이 절대 우위지만 국민 건강을 고려할 때 불길한 조짐이라고 여겨진다.

 기자는 12일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2011년 한·중 국제 파이토뉴트리언트 심포지엄’을 다녀왔다. 한국식품과학회·중국영양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암웨이가 후원하는 국제행사였다.

 각종 파이토뉴트리언트를 색깔별로 나눈 뒤 섭취량을 분석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행신 박사와 숙명여대 성미경 교수팀의 발표 내용이 흥미로웠다.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전문용어다. 식물을 뜻하는 파이토(phyto)와 영양물질을 뜻하는 뉴트리언트(nutrient)의 합성어다. 파이토케미컬(phytochemcal)·식물영양소라고도 하는데 식물의 대사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을 총칭한다. 알려진 것만 해도 8000여 가지가 넘으며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 건강에 이로운 물질로 통한다.

 이 박사는 녹색 파이토뉴트리언트로 카테킨의 일종인 EGCG(녹차)·루테인과 제아산탄(눈 건강에 유익)·아이소플라본(콩, 갱년기 증상 완화)을 꼽았다. 라이코펜(토마토)·엘라그산(딸기·호두)은 붉은색, 알리신(마늘의 매운 맛 성분)·쿼세틴(양파·사과)은 흰색, 안토시아닌(블루베리·포도)·레스베라트롤(포도·포도주)은 보라색, 알파카로틴(오렌지·호박·당근)·베타카로틴(당근·고구마·단호박)·헤스페르딘(레몬·오렌지·귤)·베타크립토산틴(호박·후추·귤)을 노란색(오렌지색 포함) 파이토뉴트리언트의 대표로 간주하고 이들의 섭취량을 각각 조사했다.

 결론은 우리 국민은 모든 색깔의 파이토뉴트리언트를 너무 적게 섭취한다는 것이다. 빨간색→녹색→보라색→노란색→흰색 순서로 많이 섭취했는데 흰색 파이토뉴트리언트도 이 박사가 제시한 잠정 권장량만큼 먹은 사람이 국민 3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식물의 색깔(껍질 등에 든 파이토뉴트리언트)은 우리 건강엔 분명히 약이다. 각종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뇌졸중 연구’라는 학술지엔 사과·배 같이 속살이 흰 과일을 즐겨 먹으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는 네덜란드 워게닝겐 대학팀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과일·채소가 뇌졸중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는 수두룩하나 특정 색깔의 과일과 뇌졸중의 연관성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참고로 한국영양학회에서 권장하는 하루 채소 섭취량은 성인 남자 기준으로 7접시(1접시당 30~70g), 과일은 3접시(여성은 2 접시, 1접시당 100~200g)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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