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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옻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0호 02면

12일 문화재청이 알린 백제 갑옷 출토 소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충남 공주 공산성에서 갑옷용 가죽 비늘 조각들이 대거 발굴됐고, 일부 비늘에는 선명한 붉은 색으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등의 글씨(사진)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이고 이는 645년, 즉 의자왕 5년이라는 정확한 연도가 드러난 것이죠. 무려 1366년 동안. 저수시설 바닥 근처에 파묻혀 있던 가죽 비늘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있는 걸까요.

답은 옻칠 때문이었습니다. 현장 발굴 책임자인 이현숙 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갑옷 비늘이 가죽에 옻칠을 여러 번 입힌 형태이며 이 중 가죽 부분은 없어지고 지금은 두터운 옻 층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온통 검은색인 비늘 조각들은 유리질 느낌의 빛을 반사한다고 하네요.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갑옷이 삼국사기 등 옛 문헌에 기록된 백제시대의 갑옷 ‘명광개(明光鎧)’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명광개란 옻칠의 일종인 황칠(黃漆)을 하여 그 광채가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했다는 전설의 갑옷입니다.

지난 6월 인터뷰했던 통영옻칠박물관 김성수 관장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일 오래된 옻칠인가요”하고 여쭤 봤더니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에서 이미 기원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옻칠 제기들(2000년이 넘은!)이 이미 발굴됐다”고 하시더군요. “가죽에 옻칠한 것을 피태(皮胎)라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별로 없어요. 옻칠 연구에 있어서도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겠는데요.”

1000년이 넘는 세월을 땅속에서 견디며 비로소 햇빛을 본 옻칠 갑옷. 그 옛날 옻칠의 진가를 알아본 선조의 혜안이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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