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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추적] 야근형사 시범 배치한 관악경찰서 ‘당곡지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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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13일 서울 은천동 당곡지구대에서 관악경찰서 소속 윤창완 형사(오른쪽)와 지구대 소속 문용주 순경이 피의자를 조사하고 있다. 이 지구대에선 지난달 22일부터 관악서 형사가 파견돼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사건 당사자를 직접 조사했는데 이후 범죄가 줄었다. [김도훈 기자]

지난 12일 오후 11시45분 서울 관악구 은천동 당곡지구대. 싸움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박희상 경사가 택시기사 황모(61)씨와 만취한 승객 이모(35)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집에 도착했는데 택시비가 없었던 이씨가 돈을 내라는 황씨를 폭행한 사건이었다. 예전 같으면 1차 조사를 마친 뒤 관할 관악경찰서로 옮겨 2차 조사를 받아야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황씨는 당곡지구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관악경찰서 소속 이백형 형사에게 1시간20분간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황씨는 “4년 전에 택시강도를 당했을 땐 내가 피해자인데도 조사를 받느라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꼬박 하룻밤을 새웠다”며 “이번에도 택시 영업을 해야 하는데 조사가 오래 걸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화진 서장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4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당직형사를 지구대에 파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사건이 집중 발생하는 시간대인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주중에는 1명, 주말에는 2명을 파견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박화진 관악경찰서장이 냈다. 박 서장은 “단순폭행처럼 경미한 사건은 합의로 끝나는 일이 많은데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이중으로 조사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 제도 도입 계기”라고 말했다. 특히 신림역 인근 유흥업소 밀집지역에 위치한 당곡지구대는 관악경찰서 산하 10개 지구대 및 파출소 사건 가운데 25% 넘게 발생해 ‘형사파견제도’가 유용하다고 봤다.

 술에 취한 승객 이씨도 1시간30분 만에 조서 작성을 마쳤다. 처음에 지구대 안의 모든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던 이씨는 ‘경미한 범죄니 사과하고 좋게 끝내자’는 이백형 형사의 말에 30여 분 뒤 실수를 인정했다. 이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서류에 지장을 찍고 귀가했다. 사건이 접수돼 처리되기까지 총 3시간이 걸렸다. 이 형사는 “경찰서로 사건이 넘어갔으면 최소한 6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관악경찰서는 이 제도를 통해 1석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달 22일 시범 도입 이후 조사시간이 절반으로 줄었고, 지구대에 형사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건 발생 건수도 줄었다. 또 예전엔 당곡지구대 6명의 근무자 가운데 2명이 경찰서 호송을 맡으면서 치안 공백이 발생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다. 관악경찰서 김도현 형사지원팀장은 “서울지방경찰청 차원에서도 ‘지구대 형사파견제도’ 도입에 대한 의견을 교환 중”이라고 말했다.

 13일 새벽 5시가 넘어 어스름히 밝아올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지구대를 드나들었다. 사위와 장모가 싸움을 하다 잡혀 오고, 은행원이 택시비가 비싸다며 지구대로 택시기사를 데리고 왔다. 이백형 형사는 “사실 경찰서에 있는 게 지구대보다 편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고생하는 지구대 경찰관들의 고생을 덜어주고 조사받는 사람들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원엽·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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