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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인구 170만에 골프장 100개 … 북아일랜드가 ‘세계 골프 수도’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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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대런 클라크를 키운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 전경.

“남자 골퍼는 북아일랜드로 보내고, 여자 골퍼는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의 홀리우드 골프장. 매니저 폴 그레이는 “북아일랜드는 왜 뛰어난 남자 선수가 많은데 여자 선수는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의 여자 선수들 때문에 서양 여자선수들은 전혀 기를 못 편다”는 농담을 하면서다.

건물 곳곳에는 “홈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로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지난 6월 US오픈에서 최저타 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로리 매킬로이(22)에 대한 환영 인사다. 벨파스트항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자리 잡은 이 골프장 곳곳에서 매킬로이를 느낄 수 있었다. 클럽하우스 로비와 계단, 레스토랑에는 매킬로이의 우승컵과 사진, 매킬로이가 사인한 마스터스 깃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킬로이의 귀여운 꼬마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클럽의 어린이 분과 의장인 필립 브래디는 “로리가 골퍼로 성공한 후 돈을 내서 쇼트게임 전용 연습장을 짓기도 했다”면서 “회원들은 로리를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약간 쇠퇴한 벨파스트 조선소도 보인다.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곳으로 매킬로이의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했다고 한다. 홀리우드 골프 클럽은 1904년에 생겼다. 100년도 넘게 코스를 지킨 연두색 페어웨이는 맑은 햇살에 반짝이며 쪽빛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코스는 북아일랜드에서는 평범한 서민 클럽일 뿐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평범한 노동자들이 회포를 푸는 곳이다. 코스에 야디지북도 없을 정도다. 주차장에는 세탁소 등 영업용 승합차들이 눈에 띈다. 매킬로이의 아버지도 바텐더를 한 서민이었다. 사람들은 소탈했다. “멀리서 왔으니 맥주나 같이 한잔 하자”고 권유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홀리우드 클럽의 로리 매킬로이 US오픈 우승 축하플래카드(사진 위)와 벨파스트시의 아일랜드 내전을 그린 벽화. [사진=성호준 기자]

“북아일랜드는 세계 골프의 수도다.” 매킬로이가 지난 7월 대런 클라크의 디 오픈 우승 직후 한 말이다. 북아일랜드는 현재 디 오픈과 US오픈 우승컵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US오픈 우승자 그레이엄 맥도웰도 북아일랜드 선수다. 최근 7개 메이저 대회 중 3개 대회를 북아일랜드 선수가 가져갔다. 인구 170만 명에 경상북도 정도 크기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나라다. 골프장 수는 약 100개다. 인구 대비 골프장 수는 한국의 10배다.

북아일랜드의 주도인 벨파스트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남아 있다. 검정색 복면을 쓴 채 기관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벽화를 볼 수 있다. 남북의 통일을 주장하며 무력투쟁을 벌인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 반대해 북아일랜드 신교도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맞서 싸웠다. 1985년 평화조약을 맺고 나서 테러는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정체성은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이다. 북아일랜드 사람은 아일랜드인이기도 하고, 영국인이기도 하다. 대런 클라크는 아일랜드 대표로 국제 대회에 나갔다. 매킬로이는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나가겠다고 선언해 아일랜드 사람들을 아쉽게 했다.

골프 여건으로는 세계 최고다. 북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와 매우 가깝다. 해협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다. 스코틀랜드와의 왕래가 매우 활발하다.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신교도가 많아 아일랜드 분단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때문에 일찍부터 골프가 발달했다. 전반적으로 스코틀랜드보다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북아일랜드는 바람과 파도가 강해 그림 같은 절벽이 발달했고 링크스에 필요한 모래 둔덕이 널렸다. 명문 골프장 주변에 절경이 많다.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 인근에 있는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useway)는 아일랜드 라힌치 골프장 인근에 있는 클리프 오브 모히어와 더불어 아일랜드의 최고 관광지다. 장기 알을 쌓아둔 것 같은 돌 기둥 4만여 개가 널려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일랜드의 거인이 스코틀랜드까지 건너갈 발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포트러시 골프장에서 보이는 던루스 성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서 있다. 던루스 성 앞바다의 파도는 매우 험하다. 그 거친 파도에 영국과 해전을 벌이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괴멸했다.

세계 10대 골프장에 꼽히는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에는 대런 클라크의 2011년 디 오픈 우승 메달이 전시되어 있다. 이 마을에 사는 클라크가 기증했다.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 프로 마이클 매클루덴은 “대런은 투어를 나갈 때를 제외하면 매일 이 골프장에 나와서 퍼트 연습을 하고 간다. 동네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이며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할 때마다 클럽하우스 바에 전화를 걸어 골든벨을 울린다”고 말했다. 클라크의 아버지 곳프리는 “대런이 런던에 살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포트러시로 와서 평안을 찾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와 인근에 있는 베이뷰 호텔에 바에도 클라크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필리핀인 바텐더는 “지금은 대회에 나갔지만 대런과 그의 아버지는 주말 두세 시간 맥주를 마시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골퍼 조너선은 “아일랜드의 골프장이 거칠고 스케일이 크다면 북아일랜드의 링크스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영국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열 포트러시 이외에도 로열 카운티 다운, 아드글래스 등 북아일랜드에는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멋진 코스들이 널려 있다.

홀리우드 골프장의 연회비는 780파운드다. 한국 돈으로 약 144만원, 한 달에 12만원꼴이다. 어린이 회원은 연 190파운드(약 35만원)를 내면 된다. 비바람이 심하기 때문에 메이저 대회의 악조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나온다. 대런 클라크와 로리 매킬로이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 세계 골프의 수도 북아일랜드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골프라고 한다.

벨파스트·포트러시=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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