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33> 눈총만 받고 권리 못 누리는 한국 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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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선수는 방해받지 않고 공을 칠 권리가 있다. 갤러리는 쾌적하게 경기를 볼 권리가 있다.

선수는 방해받지 않고 공을 칠 권리가 있다. 갤러리는 쾌적하게 경기를 볼 권리가 있다.

큰 대회가 열릴 때마다 갤러리는 동네북이 된다. ‘갤러리 에티켓 수준 이하’ 라는 기사가 터져 나온다. 정말 한국의 골프팬들의 수준이 그렇게 낮은 걸까. 보이는 현상은 그렇다. 모두 갤러리 탓일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한국의 갤러리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래서 몰염치, 비에티켓이 나오는 측면이 있다.

외국 골프대회에서는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통로를 뚫어 놓는다. 경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갤러리가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옆 홀로 이동하려면 수백m를 돌고 돌아야 한다. 갤러리 출입금지 구역이 하도 많아 그 거리가 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도 부족한데 온통 출입 금지, 금지, 금지다.

골프장은 넓지만 갤러리를 위한 땅은 바늘 꽂을 정도밖에 안 된다. 갤러리가 잔디를 조금만 밟아도 난리가 난다. 그 좁은 카트 길로 많은 사람들을 뚫고 가는 것은 러시아워에 지하철 환승역 통로를 이동하는 것 이상으로 불쾌하다. 그린 주위 로프는 왜 그렇게 멀리 쳐놓는 걸까. 공연장으로 치면 R석과 특석은 막아놓고 B석과 C석만 열어 놓는 격이다. 둔덕과 나무 등이 가려 경기를 보기가 어려운 곳도 있다. 갤러리의 동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골프장 편의대로 그냥 줄을 그려 놓는다.

마셜은 대부분 미숙하며, 본업인 갤러리 통제보다는 자신이 경기를 보는 데 더 집중한다. 주로 선글라스를 낀, 무서운 인상의 대장 마셜은 선량한 갤러리를 유격훈련 조교처럼 무섭게 대한다. 그런데 목소리가 크고 사고를 일으키는 갤러리는 도통 통제를 못한다. 착한 갤러리가 되면 무시당하고, 손해를 본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갤러리끼리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 골프팬들은 돈을 내고 대회장에 가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을 주최하는 최경주 선수와 갤러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처럼 갤러리가 최대한 경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갤러리는 그린 바로 옆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즐긴다. 거의 야외 공연장 수준이다. 최경주는 해슬리 나인브리지 골프장에 직접 페인트를 갖고 다니면서 갤러리와 선수의 동선을 그렸다. 갤러리는 그린 밖 3야드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최경주 선수는 갤러리의 휴대전화 휴대를 금지하기로 했다. 논란이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기자에게 스윙을 해보라면서 백스윙 때 카메라로 찰칵거리는 시늉을 했다. 매우 불편했다. 그는 “갤러리분들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몰지각한 갤러리의 만행에 피해를 보지 않는 것도 갤러리의 권리다. 갤러리 때문에 선수가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경기 수준이 떨어지고, 갤러리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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