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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회장 긴박했던 하루] 저녁식사후 "승복못해"

중앙일보

입력

<오후 2시15분>
본인은 현재 시대의 흐름과 우리 경제의 앞날을 생각할 때, 과거에는 그룹 체제가 각사 협조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세계적인 흐름과 여건은 각 기업들이 독자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만이 국제 경제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인은 오늘부터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정몽구.정몽헌 회장도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정몽구 회장 대신에는 국제적인 경영 감각을 가진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고, 몽헌 회장은 현재 추진 중인 남북 경협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여기에 관련된 사업에만 전념케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주주로서만 남아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각 사의 전문경영인이 잘 해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이 잘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 대독

<31일 오후 4시20분~6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31일 오후 4시20분쯤 15층 자신의 집무실로 몽구.몽헌 회장을 불러 1시간30분 넘게 자신의 동반 퇴진 선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진호 고려산업개발 회장.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이 배석해 3부자의 대화를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순원 현대차 부사장 등 현대차 관계자들은 15층 복도에서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鄭명예회장은 이날 오후 4시10분쯤 청운동 집을 나서 서울 계동 본사에 도착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일절 응답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미리 15층에서 기다리던 이진호 고려산업개발 회장은 "김재수(구조조정본부장) 오라고 해" 하며 관계자들에게 고함쳤다.

그는 그룹 홍보실 관계자를 불러 "(정주영 명예회장의 발언 내용이 적힌 자료를 흔들며) 이걸 언론에 뿌렸느냐" 며 화를 내기도 했다.

李회장은 鄭명예회장의 4남인 몽우씨(작고) 의 처남이다.

현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몽구.몽헌 회장은 아버지의 결정에 모두 따르겠다는 의사를 서로 확인했다" 고 전했다.

鄭명예회장은 오후 6시쯤 몽헌 회장.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의 부축을 받아 내려와 1층 로비를 나서며 잠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鄭명예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막는 직원을 뿌리치며 자신이 직접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다.

鄭명예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자신을 부축하려 들자 두차례나 몽구 회장의 팔을 뿌리치기도 했다.

- 무엇을 논의하셨나요.
"각 기업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

- 몽구 회장도 동의했나요.
"(화를 내며) 당연하지!" (이때 정몽구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3부자가 합의했나요.
"…." (이때 정몽헌 회장은 감정에 북받친 듯 기자에게 "당신들도 일조한 게 아니냐" 며 불만을 터뜨렸다.)

- 모두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난다.
이젠 전문경영인 체제로 한다."

- 그럼 그룹이 쪼개지는 겁니까.
"(김윤규 사장이 질문을 다시 전하자 화를 내며) 쪼개지기는 뭐가 쪼개져. "

- (기자가 다시) 정말 물러나는 겁니까.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하고, 나는(주주 입장에서) 뒤에 앉아 감독만 하겠다."

- (정몽헌 회장에게) 입장 표명을 할 생각은 없나.
"내일 하겠다."

- 기자회견을 하는 건가.
"나는 이제 기자회견할 처지도 못된다."

- (정몽구 회장에게)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나.
"(짜증내며) 나중에 얘기하겠다. 그만하자. "

- 승낙하신 건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차를 타며) 죄송합니다."

<오후 6시10분~7시10분>

鄭명예회장과 몽구.몽헌 회장 등 3부자는 오후 6시1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서울 종로에 있는 한정식집 목련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鄭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회장을 비롯,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이 함께 했다.

이를 지켜보았다는 그룹 관계자는 "세분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며 "종종 웃음 소리가 밖으로 새나오기도 했다" 고 식사 분위기를 전했다.

<오후 8시40분>

정몽구 회장은 이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회사로 돌아와 자동차 관계자와 향후 회사 운영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현대.기아차는 '현대.기아자동차의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 란 내용의 성명서를 언론사에 배포했다.

1.최근 일련의 현대사태는 본질적으로 현대투신 및 현대건설의 유동성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현대.기아자동차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2.5월 31일 현대구조조정본부 명의의 발표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사전협의가 없었으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발표된 것입니다.

3.이미 발표한 바와 같이 자동차소그룹은 6월 중에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분리할 예정이고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적인 메이커와 중요한 전략적 협상을 정몽구 회장이 직접 추진하고 있고 둘째, 기아자동차 정상화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며 셋째,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현대.기아 자동차의 통합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경영의 중심축 유지가 절박한 시점입니다.

4.한국자동차 산업은 지금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 대우 자동차의 매각 및 일본산 자동차의 대대적인 국내시장 진출 등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도약하느냐 아니면 선진 자동차 메이커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하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5.현대.기아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주주로서뿐만 아니라 30여년간 자동차업계에 종사해 온 책임 전문경영인으로 기아자동차 인수 이후 약 6천억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시켰고, 노사관계를 안정시켰으며 공격적인 글로벌 경영전략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등 이미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6.오늘 창업자이신 정주영 명예회장이 밝히신 큰 원칙은 향후 원리원칙 경영에 충실하고 전문성에 바탕을 둔 경영을 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합니다.

7.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자동차의 대주주이자 책임 전문경영인이자 대표이사로서 자동차 사업에 전념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현대.기아자동차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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