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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생 목련은 일본에 이름 빼앗긴 꼴

중앙일보

입력

지난 봄, 화창하게 피어난 목련을 보셨나요? 여러분들이 곤한 일상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길목에서 목련은 봄이 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렸습니다. 목련은 그렇게 해마다 매운 바람이 옷깃을 매섭게 파고드는 이른 봄, 다른 꽃보다 먼저 피어나 다른 꽃보다 먼저 꽃송이를 떨어뜨립니다. 중국의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아쉽게 떨어져 내리는 목련 꽃을 보며 우리의 젊음도 이미 가고 있구나 라고 장탄식하는 시를 썼어요.

처음 피어난 목련 꽃은 이미 떨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젊은 시절도 더불어 지나가고 있구나
辛夷始花亦已落
況我與爾非壯年

봄의 화신(花信) 목련은 슬픈 나무입니다. 목련 꽃은 이듬해 봄에는 반드시 목련 가지에 매달리는 초록의 이파리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추운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서둘러 피어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이파리는 나지 않고 깊은 그리움과 기나긴 기다림에 지친 목련 꽃은 참혹하게 떨어지고 말지요. 이파리보다 먼저 피는 꽃이 어디 목련 뿐이겠습니까만, 앙상한 가지에 홀로 순백(純白)으로 피어나는 목련 꽃의 외로움은 슬픔을 머금은 꽃이라 상상하게 합니다.

▶목련의 종류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목련은 제주도 개미목 부근에서 처음 발견된 목련과 흔히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함박꽃나무 등 두 가지입니다. 이 중 목련은 제주도에서부터 일본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이 품종을 처음 발견한 일본의 식물학자가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할 때 고부시라는 일본 이름을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부시 혹은 고부시 목련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고유의 이름인 목련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목련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목련이 아니라 자주색 꽃을 피우는 자목련과 함께 1백여년 전 중국에서 도입된 백목련을 이야기합니다.

목련과에 속하는 식물은 세계적으로 86종이 있어요. 그 중 천리포수목원에는 99년 현재 34종 9변종(variety) 419원예종(cultivar)이 수집되어 있습니다. 목련 속에 속하는 식물의 속명(屬名)은 매그놀리아 혹은 마그놀리아로 읽는 Magnolia입니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마그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지요.

'고부시'로 알려진 한국 자생의 목련(Magnolia kobus)은 이른 봄에 흰 꽃이 피며 향기가 무척 진합니다. 백목련보다 보름 정도 먼저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인 셈이지요. 흰 색의 꽃으로 꽃잎은 6장입니다. '고부시'는 '주먹'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목련의 열매가 마치 주먹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였다고 해요.

백목련(Magnolia denudata)은 낙엽성 교목으로 9장의 흰 색 꽃잎이 달걀 모양으로 10센티미터 정도 자랍니다. 이와 함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자목련(Magnolia liliflora)의 꽃잎은 6장으로 자주색의 꽃을 피우지요.

후박나무라고도 불리는 일본목련(Magnolia obovata)은 백목련과 달리 5월 께 잎이 먼저 나온 뒤에 향기가 강한 꽃이 피어납니다. 꽃잎은 9장이에요.

미국 원산의 태산목(Magnolia grandiflora)은 상록성입니다. 독특하지요. 천리포수목원의 사무실을 지나 유리 온실 옆에는 점잖게 움틀고 있는 태산목이 그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지요. 일년 내내 푸른 태산목 이파리의 표면은 윤이 나는 진한 초록색이고 잎 뒤에는 갈색의 털이 있어요. 이파리 한 장의 길이가 20센티미터까지 자랍니다. 꽃은 여름에 흰 색으로 피웁니다.

태산목의 품종 중 하나인 리틀젬(Little Gem)은 태산목 만큼 웅장하게 자라지는 않지만, 특이한 것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꽃을 계속 피운다는 것입니다. 겨울에 만날 수 있는 목련 꽃이지요.

여기서 잠깐 '나무읽기'를 책임감수하는 천리포수목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천리포수목원은 충남 태안군에 자리잡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목원으로 특히 목련에 있어서는 수종이나 식재된 나무 숫자 등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이 천리포수목원의 본관 뒤 연못 가에는 겨울에 꽃을 피우는 목련, 리틀젬이 한 그루 있습니다.

지난 해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 저는 리틀젬을 처음 만났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관리부장 이규현 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저는 목련 꽃이 피어나는 봄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이 부장은 '지금도 목련이 피었는데, 무슨 봄을 기다리냐'고 하더군요. 그때가 12월 초순 께였는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했는데, 정말 수목원 본관 연못가에 자리 한 리틀젬은 놀랍게도 상아색 꽃봉오리를 피어 올리고 있었어요.

꽃이 아래를 향해 피는 특징을 갖는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는 여름에 흰 색의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깊은 산중에서 볼 수 있어요.

(다음 호에 '목련' 이야기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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