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노벨상이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올해도 되풀이하고 말았다. 외신에도 해외토픽으로 소개된다는 한국의 ‘노벨 문학상 소동’ 말이다. 수상자가 발표된 6일 저녁, 자의든 타의든 해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의 경기도 안성 자택으로 신문사 기자들과 방송사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본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화부 후배 기자는 조금 늦게 출발했다. 미처 시인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상자가 발표됐다. 시인의 집은 차량 내비게이션으로도 찾기 어려웠단다. 후배가 볼멘소리로 전화했다. “차 돌릴게요!”

 사실 기자는 올해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봤다. 한국도 반드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애국심의 발로나, 고은 시인의 문학세계에 대단하게 심취해서가 아니다. 우선 고은 시인의 이름이 유력하게 거론되지 않았다. 예외도 있지만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의 한림원은 대개 의외의 선택으로 허를 찔렀다. 한림원 사무총장인 페테르 엥글룬드의 발언은 사람을 더 헷갈리게 했다. “최근 수상자 10명 중 7명이 유럽에서 나왔을 정도로 편중이 심각하기 때문에 비유럽 언어권 전문가들을 동원해 재능 있는 작가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 영어권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가 나왔다” “중동의 민주화나 일본 대지진 등 큰 사건들이 수상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미국도 유럽도 아니라니. 지난해 남미에서 나왔으니 남는 건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닌가. 더구나 시인은 1996년 이후 받은 적이 없다. 아랍 민주화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시리아의 시인 아도니스마저 제친 것 아닌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 추측과 혼란을 가중시킨 점을 의식해서인지 엥글룬드는 수상자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올해 선택의 정당성을 애써 강조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질문자의 두 번째 질문은 “스웨덴 한림원이 스웨덴 작가에게 상을 줬습니다. 외국에서 논란이 일지 않을까요”였다. 엥글룬드의 답이 걸작이다. “글쎄요, 아마도요. 하지만 스웨덴 작가가 마지막으로 노벨상을 받은 게 곧 40년이 된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스웨덴 작가에게 한 해 걸러 상을 뿌리는 것은 아니에요.”

 문학상의 권위는 공정함과 투명함, 받을 만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적절함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엥글룬드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앞으로 노벨 문학상이 특정 지역 편중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혹시 올해 한림원은 비유럽권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챙길 사람을 챙긴 것은 아닌가. 아니길 바란다. 물론 기자부터 반성하고 싶다. 도대체 노벨상이 뭐길래. 내년부터는 좀 침착하자!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