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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달리다〉의 최양일 감독

중앙일보

입력

최양일 감독과는 한번 만난 일이 있다. 그는 국내에서 열린 한 영화제에 참석해 소규모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당시 느꼈던 점은 대단히 '마초'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무뚝뚝하며 어떤 면에선 말이 거칠다는 인상까지 줬다. 하긴, 되돌아보면 최양일 감독의 삶 자체가 거칠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영화를 조명 스탭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 등에선 조감독을 맡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부각된 일본감독들처럼 인텔리 출신도 아니며 게다가 재일 한국인이기도 하다. 자세한 프로필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런 이야기만으로 최양일 감독의 험난했던 길이 대충 짐작되지 않는가.

최양일 감독의 영화들은 남성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는 1980년대 초반까지 핑크영화, 다시 말해서 싸구려 에로물을 만들면서 감독 수업을 쌓는다. 정식 데뷔작은 〈10층의 모기〉. 이혼한 경찰관이 위자료와 자녀 양육비를 대기 위해 강도 행각에 나서는 줄거리다. 감독은 코믹하면서 일본 야쿠자 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는 이 영화로 일본 〈키네마 준보〉 등의 영화잡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 감독의 행보는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주로 범죄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 골몰했던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살해당했다〉와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그리고 이후 만든 다카무라 카오루 원작의 〈막스의 산〉 등은 일본의 대중소설을 영화로 만든 경우다. 이중에서 〈막스의 산〉은 원작도 워낙 뛰어나지만, 감독의 개성을 고스란히 집약한 역작으로 꼽힌다. 20여년 전에 발생한 살인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지는, 서늘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영화다.

감독이 소설의 영화화에만 골몰했던 것은 아니다. 〈꽃의 아스카 조직〉은 만화 원작이며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물. 아스카라는 여주인공이 두 패로 나뉘어진 범죄세계에서 활약하는,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를 일본풍으로 개작한 듯한 작품이다. 감독의 영화 중에서 비교적 밝고 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다. 록밴드가 등장하는 청춘물 〈A사인 데이즈〉는 베트남전 시대의 오키나와가 배경이다. 얼핏 일관성 없어 보이는 이 영화들에서 최양일 감독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에게 동지애와 응시의 시선을 꾸준히 던지고 있다.

아무래도 최양일 감독의 대표작은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다. 이 영화는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강충남이라는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강충남과 일하는 운전사 중엔 일본인도 있고 동남아 계열의 사람도 있다. 여기서 일본인들은 자기 모멸에 빠진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재일 한국인 문제라는 민감한 소재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마 영화는 다분히 코믹하다. 영화 제목은 지리에 어두운 한 운전사가 회사로 전화를 하면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라는 선문답식 답변이 오가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일본 내의 외국인 문제에 관한 사회적 발언과 왁자지껄한 코미디 요소를 버무림으로써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국내에선 최근 〈개 달리다〉라는 영화가 개봉 예정이다. 최양일 감독의 근작영화다. 아직까지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 같은, 그의 대표작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감독에 대해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나카야마는 신주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형사. 한국인 정보원 히데요시와 결탁해 야쿠자 집단에게 경찰의 정보를 흘리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배신과 우정이 공존하던 이들의 관계는 모모라는 중국 여성이 갑작스럽게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흔들린다. 나카야마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모모의 시체를 짊어지고 화려한 신주쿠 거리로 향한다.

〈개 달리다〉는 최양일 감독의 영화치곤 가벼운 편이다.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처럼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 등의 민족문제가 조금씩 곁들여지지만 그리 심각하진 않다. 최양일 감독은 "나는 무법자도, 반영웅도 아닌 실패한 인간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개 달리다〉는 최양일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고 있으며 일본의 치부를 건드리는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면모 역시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그의 영화는 활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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