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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복잡한 도시 한구석에서 벌어지는 9개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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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김경욱 지음, 창비
299쪽, 1만1000원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한 글쓰기를 선보여온 저자의 새 소설집. 2009년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올랐던 표제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포함해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전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김씨의 문장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먹기 편한 유동식, 쌓기 좋은 반듯한 벽돌을 연상시킨다.

 그 문장들이 이끄는 대로 재게 발을 놀리다 보면 대개는 이도 저도 못하는 갑갑한 상황, 개인 내면의 치부, 혹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같은 것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소설 곳곳에 박혀 있는 잠언풍 문장은 역시 음식으로 치면 고명 같은 존재. 소설의 감칠맛을 더한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도시의 비극’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신에게는…’는 베트남 참전용사가 또래 남자 친구들에게 집단 성추행 당한 열 살 짜리 손녀딸을 위해 아파트 단지에서 복수극을 벌이는 얘기다. 공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영화 ‘더티 해리’ 식의 사적 처단이다.

 ‘러닝 맨’에서는 한가로운 평일 오후의 한강변 둔치가 머리털 쭈뼛 서는 공포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뒤바뀐다. 조기 유학에서 돌아온 10대 소녀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취업 사수생인 ‘나’. 야릇한 감정을 품고 소녀 제자와 함께 한강변 나들이에 나섰다가 불량한 꼬마 아이들에게 돌을 맞고 부녀자 납치사건의 용의자를 연상시키는 사람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소녀는 오리배를 타고 싶어 했으나 나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러닝 맨으로부터 쫓기다 보니 어느새 오리배를 타고 도망가는 중이다. 소녀와 핸드폰은 어디선가에서 팽개친 채. ‘99%’는 내면의 의혹을 어떻게 해도 다스리지 못해 분열적 상황에 빠지는 현대인의 불안을 그린 작품이다. 한 편 한 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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