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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진단…전문가 좌담] "구조조정 밑그림 내놔야"

중앙일보

입력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증시를 감싸고 있다. 최근 주가가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도 시장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주식시장 전문가 네명을 초청, 최근 주식시장 침체 원인과 해결방안을 듣는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권성철=최근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에다 제2위기설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어제 날짜(24일)로 종합주가지수는 연초 대비 34%나 떨어졌고 코스닥은 55% 넘게 하락했다.그 원인은 무엇인가.

안종현=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만 국내 증시의 낙폭은 다른 나라를 1백으로 봤을 때 1백30 정도로 컸다. 예컨대 1백이 해외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나머지는 채권시가평가제 실시와 은행구조조정 부진 등에 따른 국내 요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옥성=우선 시장에서 걱정하는 제2의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다.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하게 된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투신사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터져 버렸고 은행부실 등은 정부가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는 바람에 불거졌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고 금융위기설 자체가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시작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근모=증시 수급상황이 너무 나쁜 게 문제다. 작년 4분기부터 올초까지 코스닥에 돈이 지나치게 돈이 몰린 것도 수급을 악화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정부가 이를 조장한 측면도 있다.코스닥에서 개인들이 돈을 잃으면서 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된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 자금운용 측면에서 채권 비중은 계속 올라간 반면 주식 비중은 줄고 있다. 금융기관 금융자산 중 채권 비중이 35%까지 올랐다. 과거 20% 수준이었었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주식은 4%이하로 떨어졌다. 그 이면에는 정부가 금융구조조정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 수급이 악화된 측면도 있다. 시중에 부동자금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으로 올 수 있는 자금도 그만큼 많다고 볼수 있다. 또 하나는 경기논쟁이다. 선행지수가 하락세를 보인 것을 두고서 경기가 지난해말을 정점으로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의견도 있다.

권성철=미국의 경우 금리 추가인상으로 경기가 급격하게 후퇴하고 그것이 우리의 수출감소,외국인자금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미국 경기를 어떻게 보나.

안종현=미국은 동남아 금융위기가 오기 전에 금리를 올렸어야 하는데 이머징마켓(신흥시장)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인상을 유보했었다. 최근 금리인상은 경기 연착륙을 위한 노력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높다.이 과정에서 미 금리는 7.5%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옥성=실제로 미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선제적 금리정책 등이 효과를 발휘해 경기 연착륙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근모=경기 연착륙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다.그러나 반작용으로 주식시장은 경착륙을 할지 모른다.미 연방준비은행 그린스펀 의장이 주가 상승에 따른 소비증가가 미국 경제를 과열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연착륙을 위해선 주식시장의 희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권성철=미국 금리가 7% 이상으로 높아지면 국내 시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 아닌
가. 최근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어 주식시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는데.

안종현=경상수지 흑자폭이 줄 때 설비투자가 일어나고 이 결과 자금수요도 느는 게 과거 경험이다.이와 관련, 최근 금유기관들에 대해 대기업 회사채 보유한도를 없애는 등 조치를 취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실제로 그 조치로 금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엔·달러 환율과 유가인데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옥성=자체 분석으로 유가는 연평균 27∼28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도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드는데 대해 언론 등에서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시장은 더 불안해 지는 것 아닌가.

이근모=무역수지 흑자는 유동성 확대로 이어져 주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지난해와 올초는 재고를 해소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무역수지 흑자가 50억 달러 이하로 줄어들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권성철=국내 돌아다니는 돈이 너무 많다.물가상승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앞으로 6개월 내 인플레로 인한 금리인상 요인은 없는지 궁금하다.

안종현=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은 상태다.하지만 대규모 설비투자가 없는데다 연봉제·성과급제 도입으로 임금 상승압력도 덜하다.물가가 오르겠지만 높은 상태는 아니다. 금리는 지금도 높은 수준 아니냐.

이옥성=1분기 경제성장률을 전년 동기가 아진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1.8%에 불과하다.경기과열에 따른 물가상승 가능성은 적다. 금리는 인플레 요인보다는 채권시가평가제 이후 일부 한계기업의 추가 도산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에서 올 가능성이 더 높다.

이근모=경기과열 문제는 재고조정을 제외하면 지난해 성장률은 6%가 안됐고 올해도 6%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또 유가상승에 따른 물가압력도 크지 않을 것 같고 물가안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물가상승률을 3% 정도로 보면 적정금리는 9% 수준이다. 장기금리는 3분기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 현시점에서 단기금리는 좀 더 올려야 할 것 같다. 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단기자금을 조달, 장기로 운영하면 3% 포인트 이상 금리차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없어져야 한다.

권성철=현재 시중의 자금이 풍부하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문제는 이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데 있다. 특히 증시의 수급 불균형은 투신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안종현=지난해 같으면 고객들이 수익증권 환매를 신청해도 판매사인 증권·투신사들이 팔지 않고 남겨두면서 자체적으로 이를 떠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우채권으로 큰 손실을 본 이후 이젠 한계에 부닥쳤다. 이 때문에 고객의 환매가 들어오면 곧바로 주식을 팔아야 한다. 주식형 수익증권의 경우 3개월·6개월짜리가 많은데 고객들은 이 기간이 지나면 이를 다 찾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투신권의 구조적인 문제가 종합주가지수를 1백 포인트 가량 더 떨어뜨렸을 것이다.

이옥성=투신사가 과거에는 어느 정도 안전장치 역할을 했지만 대우채권 문제 등으로 신뢰를 상실했다.그러다 보니 투자자들 입장에선 안심하고 돈을 맡길 데가 없어진 것이다.전체적인 불안감 때문에 자금운용을 단기화하고 있다.

권성철=24일 한국·대한투신에 공적자금 2조원이 투입됐는데 투신권으로 자금이 다시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이근모=돈을 넣는다고 해서 투신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는 어렵다.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갈 만한 금융기관이 없다. 은행 예금까지 단기부동화하는 것이 그 예다. 특히 은행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합병에 대비하느라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러면 예대마진이 줄어 수익성은 떨어지고 시중에 돈은 돌지 않는다. 금융 구조조정이 대한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그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안종현=오늘날 투신권의 근본 문제는 바로 채권 시가평가제를 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장부가 평가를 하면서 은행금리보다 항상 더 주었으니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투신상품이 저축상품처럼 인식되다 보니 심지어 주식형상품도 최소한 원금 보전을 해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채권 시가평가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 형성을 의미한다. 일부에서 시가평가제가 연기될 수 있다는 설도 나오는데 만일 그렇다면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권성철=현재 시장에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을 충분히 확보히 확보할 수 있으르 것인가를 놓고 회의론이 강하다.

이근모=사실 그렇다. 따라서 정부는 일시적인 충격이 있다 해도 국채를 발행해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찔끔찔끔 돈을 넣지 말고 현재 부실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산정하고 한번에 이를 털어내고 가야한다.

이옥성=같은 생각이다.현재 주가는 그 부분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권성철=과연 우리 시장의 기초 여건을 볼 때 이런 불확실성만 제거되면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위험요인이 남아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안종현=주식시장을 전망하려면 시중자금·금리·기업실적 등 3가지 분야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기업들은 1분기 7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냈다. 금리면에서도 금융불안 요인이 제거된다면 지금보다는 낮아질 것으로 본다. 유동성 측면에서도 경상수지 흑자의 감소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이미 시중에는 돈이 많이 풀려 있다. 연말에는 1,000 포인트 선을 회복할 것으로 본다.

이근모=과거 주가와 경쟁국 시장,채권 등과 비교할 때 현재 시장은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시중금리를 웃도는 것은 사상 초유의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보다는 채권을 선호하는 것은 투자 포트폴리오가 잘못된 것으로밖에 해석할 뿐이다.

이옥성=정부의지가 중요하다.정부는 그동안 현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보다가 이제야 심각성을 인식한 것 같은 느낌이다. 외국인들도 정부가 빨리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아직 한국을 이탈하지 않고 있다.적어도 6월말까지는 확실히 가닥을 잡아야 한다. 금융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외국인투자자들의 이탈하면 주가는 예상 외로 폭락할 수도 있다.

이근모=금융구조조정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시장이 이를 확신하지는 않는 듯하다. 이제 우리 주식시장은 외국인들의 비중이 커진 만큼 해외시장의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미국 증시의 급락 가능성이 남아있는 이상, 해외요인이 더 나빠져 외국인들이 이탈하기 전에 우리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리=송상훈·김원배 기자

<좌담회 참석자>

▶이근모 굿모닝증권 전무 (조사본부 및 국제담당)
▶안종현 제일투신운용 상무 (주식운용담당)
▶이옥성 엥도수에즈WI카증권 서울지점장
▶권성철 <사회> 현대증권 전무(국제담당)

<올해 증시 관련 주요 일지>

▶1월 4일 종합주가지수 1059.04, 코스닥지수 266.00
▶2월 8일 대우채권 3차 환매 개시(95% 지급), 코스닥 거래대금 사상 최초로 거래소 추월
▶2월 23일 정부, 증권시장균형발전대책 발표
▶3월 9일 코스닥지수 사상최고치(281.89) 기록
▶4월 16일 미 나스닥지수 사상 최대의 폭락세(9.67%)
▶4월 17일 종합주가지수(11.63%).코스닥지수(11.40%) 동반 대폭락, 거래소 시장 사상 최초로 현물주식에 대한 일시매매정지 조치
▶4월 26일 현대투신 문제로 현대 계열사 주가 폭락. 현대 유동성 위기설 확산
▶4월 27일 종합주가지수 700선 붕괴(692.07)
▶5월 4일 현대그룹, 투신 정상화 위해 1조7천억원 담보 제공
▶5월 12일 정부, 한투.대투에 공적자금 4조9천억원 투입 등 투신 정상화 계획 발표
▶5월 16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단기금리 0.5%포인트 인상
▶5월 18일 코스닥지수 150선 붕괴(136.37)
▶5월 22일 증권거래소 점심시간 개장, 거래대금 연중 최저(1조5천7백억원)
▶5월 24일 코스닥지수 9일 연속 하락(115.46), 정부 한투.대투에 공적자금 2조원 현금 투입
▶5월 25일 청와대 긴급 경제장관 회의, 종합주가지수 699.53, 코스닥지수 1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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