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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 "이젠 한국서 영화 찍을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신상옥(80).최은희(74) 부부가 한국에서의 활동을 공식 재개했다. 1986년3월 북한을 빠져나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해 온 두 사람은 최근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감독과 배우로서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중심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체제가 다른 남과 북 양쪽에서 영화를 만든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소회가 남다른 듯 했다.

-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제작환경은 어땠나.

"5년간 감옥 살이를 하고 난 뒤 1983년 12월부터 86년3월까지 모두 여섯편을 만들었다. 네 달에 한 편꼴이니 다작(多作)을 한 셈이다. 북한은 영화만드는 환경은 '천국' 에 가깝다. 그만큼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주의 국가라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어 시나리오만 있으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다. 배우도 충분하고 촬영소도 있고 대규모의 엑스트라가 필요하면 군인들을 동원해 줄 정도였다. 내가 만든 영화는 최서해의 소설이 원작인 〈탈출기〉, 이준열사의 삶을 다룬 〈돌아오지 않는 밀사〉, 일본의 〈고질라〉를 염두에 두고 만든 〈불가사리〉, 〈심청전〉과 함께 뮤지컬 형식으로 만든 〈사랑 사랑 내사랑(춘향전)〉, 강경애의 소설을 각색한 〈소금〉이 있다. 〈불가사리〉를 찍는 도중 북한을 빠져 나왔다.

극영화는 아니지만 남포관문을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 산업 영화도 만들었다. 직접 메가폰을 잡진 않았지만 젊은 감독들을 내세워 뒤에서 작업을 도와준 영화도 열 두편이나 된다. 그만큼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이들 중 〈소금〉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는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탔다. 특히 뮤지컬로 만든 〈춘향전〉은 특별히 애정이 간다. 70㎜ 영화인 데다 판소리가 아닌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해서 삽입했는데 걸작이라고 자부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85년 1월1일 김일성이 신년인사를 받기위해 당간부들을 부른 자리에 우리 부부도 초대됐다. 김일성을 그 때 처음 대면했다. 그 때 사회를 보던 이가 "김일성 수령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새해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입니다" 라고 하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북한에서는 '사랑' 이라는 말이 부르주아 용어라고 해서 잘 쓰이지 않는데 김일성이 참석한 엄숙한 자리에서 '사랑' 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놀랐던 것이다. 아무튼 〈사랑사랑 내사랑〉은 그 해 신년하례식에서 처음 상영됐고 이후 일반에 공개됐는데 북한에서 처음 암표가 나 돌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 미국에서는 어떻게 보냈나.

"LA에서 신프러덕션이라는 영화제작사를 차려 운영했다. 가족영화를 만들어서 배급망이 좋은 월트디즈니나 컬럼비아같은 배급사와 반반씩 수익을 나누는 조건으로 손잡았다. 경제적으로 제법 괜찮았다.
예를 들어 최근 만든 영화 중 한편은 2백80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는데 디즈니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배급해 4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비디오로도 2백만개가 팔렸다. 이런 식으로 만든 작품이 다섯 편 정도 된다.
"
- 한국에서의 사업구상은.

"현재 기획 중인 영화가 두 편 있는데 곧 제작에 착수한다. 두 편을 동시에 진행할 생각인데 한 편은 동학 혁명을 이끈 전봉준의 삶을 사실적으로 복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 카고' 라는 제목도 정해놓았다. 6.25때 흥남에서 10만명이 철수하던 얘기다.

이때 〈쉰들러 리스트〉에 맞먹을 만큼 역할을 한 실존 인물(의사)이 있다.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휴먼 드라마가 될 것이다. 단순히 반공영화나 친미영화가 아니다 . 올해가 6.25 발발 50주년이니까 역사적인 의미도 있다. 미 국방성의 협조로 당시 촬영한 뉴스 릴등 자료도 확보해 놓은 상태다.

〈크리스마스 카고〉는 입김이 뿜어나오는 겨울에 촬영해야 하기때문에 전봉준 영화부터 착수하려고 한다. 황토현 등 현장 답사도 다 끝내놓았고 시나리오도 금방 끝낼 수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이다.
전봉준 영화는 북한에 있을 때도 하고 싶었으나 배경이 호남이고 해서 착수하지 못했다. 두 작품 다 각각 60억 내외의 제작비가 들 것 같다.
몇몇 투자할 의사를 가진 사람이 있어 제작비 마련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 요즘 한국영화를 좀 봤나.

"〈섬〉을 잘 봤다. 의욕적이고 감수성이 좋은 것 같더라. 연결이 어색하고 몇몇장면에선 스토리의 필연성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감독으로 보였다. 〈쉬리〉는 영화 철학에는 문제가 있지만 편집은 아주 좋았다. 내가 〈빨간 마후라〉를 편집할 때 저렇게 했지라고 느낄 정도였다.
〈빨간마후라〉는 당시 서울 인구가 2백만정도일 때 4,50만명을 동원했으니까 〈쉬리〉의 인기에 못지 않았다.

나는 채플린을 존경한다. 그가 "돈 벌려고 열심히 만들다 보니까 남들이 예술이라고 불러 주더라" 라고 한 말은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락성과 사회성을 제대로 결합시키는 게 중요하다. 나도 한 때 〈쌀〉이나 〈상록수〉같은 사회성있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다 손님이 안 들었다. 영화는 한 쪽으로 기울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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