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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보다 씀씀이 큰 요우커 … “경기도서 묵는다 하면 15% 여행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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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한국을 찾은 쑨카이(孫凱·51)씨는 “돈 쓸 데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좋은 호텔에 묵으려 해도 방이 없으니 돈이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살 것도 마땅치 않다. 고민 끝에 쑨씨는 홍삼과 김만 샀다.

 개별관광(FIT) 요우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한국 관광에 대한 만족도는 이처럼 낮다. 요우커의 만족도는 3.87점으로 홍콩(4.08), 마카오(4.07)보다 뒤처진다. FIT로 흐름이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단체관광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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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춘추전국시대’ 열자=2001년 532만 명이었던 외국 관광객 수는 지난해 879만 명으로 65% 늘었다. 같은 기간 호텔 객실 수는 7만4766개로, 35.02% 증가에 그쳤다. 서울이 특히 심하다. 지난해 말 객실 수는 2만3645개로, 관광객 수 대비 적정규모인 4만 개에 못 미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 장영화 사무관은 “건설 중인 객실 4000개로는 객실난을 덜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심을 제외한 서울 지역에 중저가 호텔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FIT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맞춤형 숙소도 필요하다. 중구 서소문의 레지던스 호텔인 프레이저 플레이스의 바우터 배닝 총지배인은 “카펫 대신에 나무장판을 깔고 현대적 디자인을 객실에 도입한 뒤부터 중국인 투숙객이 늘었다”며 “중국인에 맞는 스타일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노스텔(모텔을 개조한 관광호텔)이나 B&B(숙박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중·저가 숙소를 개발하는 것도 FIT 요우커를 끄는 데 긴요하다. 중국관광 전문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호텔이 병존하는, 호텔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수영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차장은 “한국적 삶을 맛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지만 중국인들은 언어 문제로 이용하지 못한다”며 “요우커를 위한 민박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신개념 숙소가 뜬다=서울 삼청동의 ‘126 맨션’은 전형적인 B&B(Bed & Breakfast)다. B&B는 잠자리와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126 맨션엔 8월부터 빈방 찾기가 어렵다. 일본, 유럽, 미국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주인 이현정씨는 “상하이나 베이징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귀띔한다.

 투숙객들의 만족도는 최상급이다. 우선 정갈한 한국식 온돌방에 감탄한다. 고향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함도 한몫한다. 예술적인 디자인과 삼청동의 수려한 환경도 이들을 사로잡는다. 이 집 노모가 차려주는 웰빙 아침식사는 단연 인기다. 투숙객들은 연신 “원더풀!”을 외친다.

 추정림씨의 2층짜리 일원동 단독주택에도 외국인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엔 미국 워싱턴에 사는 중국인 가족 3명이 일주일간 묵고 갔다. 추씨는 방 2개에 화장실과 주방이 딸린 2층을 빌려주고 1인당 매일 5만원을 받는다. 추씨는 “소일삼아 하는데도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도 한국형 B&B 사업인 ‘코리아 스테이(Korea Stay)’를 추진 중이다. 가정문화를 체험하는 홈스테이와 B&B 유형으로 구분돼 운영된다. B&B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외국인 관광객을 수용할 만큼 숙박 시설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롯데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88%다. 다른 호텔도 비슷하다. 저렴한 관광호텔도 85~90% 정도다.

 ◆관광호텔 규제 풀어야=최영수(56) 라미드 호텔전문학교 학장은 “박 전 대통령은 사회적 규제는 늘렸지만 호텔에 대한 규제만은 상당히 완화했다”며 “호텔은 가진 자들만 이용하는 곳이니 세금 왕창 매기고 규제만 하면 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학장은 “규제를 풀었다고 하지만 관광호텔 하나 만들려면 여전히 72개의 도장이 필요하다”며 “게다가 사치산업이라는 이유로 특소세까지 물린다”고 지적했다.

 이중 허가도 문제다. 일반숙박업소인 모텔이나 여관은 허가를 한 번만 받으면 끝나지만 관광호텔은 이 외에도 관광진흥법이 정하는 각종 허가를 또 받아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호텔 전문가는 “호텔업의 투자회수 기간은 30년이다.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도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으니 쉽게 관광호텔을 지을 생각을 못 한다”고 말했다.

◆탐사기획부문=이승녕·고성표·박민제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위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산업부=박혜민·정선언 기자, JES 여행레저팀=홍지연 기자, 사진=변선구·강정현·신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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