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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불법·변칙영업 ‘방패막이’ 된 대형 로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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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회사의 불법 영업에 법무법인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양종합터미널에 대한 저축은행 불법 대출에도 일부 법무법인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사진은 한 저축은행의 창구 모습. [연합뉴스]

지난봄 기업은행에선 때아닌 법률 논쟁이 벌어졌다. 기업은행이 팔고 있는 자회사 IBK연금보험의 보험상품 때문이다. 법률에 따르면 은행은 특정 보험사 상품을 25% 넘게 팔아줄 수 없다. 기업은행은 대신 꾀를 냈다. 상품을 더 못 팔아주는 대신 각 영업점장에게 보험 고객을 소개하고 고객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법률상 문제가 없는지를 놓고 기업은행과 IBK연금보험이 각각 다른 로펌에 해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기업은행이 의뢰한 법무법인 광장은 ‘정보 공유는 법에 어긋난다’는 해석을 보내 왔다. 하지만 IBK연금보험의 의뢰를 받은 김앤장은 ‘법률상 문제 없다’고 했다. 논란 끝에 고과 반영까지 하는 지원방안은 없던 일이 됐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가 아닐 경우 계열사나 관계사 간에 정보 공유가 명백히 금지되는데 어떻게 이런 법률 검토가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불법·변칙 영업에 법무법인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거액의 수수료를 주는 의뢰인의 입맛에 맞게 각종 법률 논리를 동원해 탈·불법을 사실상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영업정지된 제일과 에이스저축은행이 대출해준 일산 고양종합터미널 사업도 유명 로펌이 교묘한 논리로 저축은행 편을 들어줘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경영진단 과정에서 제일·제일2·에이스저축은행이 공동사업자로 위장한 차명 차주를 내세워 한도를 초과해 대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저축은행들은 공동사업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론 법망을 피하려고 시행사가 내세운 이름만 빌려준 사업자인 게 밝혀졌다. 이런 방식으로 3개 저축은행은 수십 개의 위장 공동사업자에게 10년 동안 64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줬다.

 하지만 C법무법인은 경영평가위원회에 제출한 법률 검토 의견서에서 “대출한도를 위반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사료된다”고 주장했다. H법무법인은 “시행사와 공동사업자들이 사실상 동일차주라는 논란이 제기될 수는 있다”면서도 “사업이 중단돼 대출금 회수가 곤란해지고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느니 다수의 사업 참여자(공동사업자)에 대출해 사업을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D법무법인도 지난달 8일 “고양터미널 사업의 대출을 받은 공동사업자들은 동일차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내놨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을 ‘법률상 문제 없다’고 왜곡한 건 지나쳤다”며 “사업이 어려워지면 편법 대출도 괜찮다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회계법인에 의한 외부 감사는 잘못됐을 경우 일정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법무법인의 법률 검토는 의뢰인 입장에서 변호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대출에 문제가 없다는 법무법인의 주장에도 결국 해당 저축은행은 한 달 만에 영업정지됐고, 수많은 피해자가 생기게 됐다”며 “금융회사의 부실은 자칫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자문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방카슈랑스=은행의 판매망을 통해 보험상품을 팔고,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의 판매망이 은행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최근에는 금융권역의 장벽이 낮아지는 추세에 있어 일반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 증권회사, 카드사 등과 같은 금융회사에서도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보험상품의 판매에 국한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은행과 보험사 간의 공동 상품 개발이나 종합적인 업무제휴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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