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여자는 왜’] 스타일 묻는데 웬 사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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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현


“스타일요? 44사이즈가 딱 맞는 S라인이죠.” 소개팅이 들어왔을 때 상대방의 스타일을 묻는 후배 L에게 주선자인 옆 사무실 여직원이 대답한 말은 엉뚱했다. 글쎄, L이 궁금했던 게 상대방의 옷 사이즈였던가?

 주선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가벼운 언질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L이 궁금했던 것은 상대방이 소개팅 후 2차로 가볍게 맥주까지 마실 수 있는 소탈한 스타일인지, 혹은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새침데기 스타일인지 하는 거였다. 바로 전 소개팅에서 말 없는 상대방 탓에 안절부절못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여하튼 소개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후 둘의 만남은 화기애애하게 지속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약간의 위기가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L이 만난 지 100일을 맞은 그녀 S에게 옷을 선물했는데, 불행히도 55사이즈를 골랐던 거다. 설상가상으로 기념일 계산도 하루가 틀렸다고 한다. S는 기념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옷 사이즈도 몰라준 L이 야속했는지 며칠간 꽤나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 후로 L은 선물과 기념일에 유의했지만 시련은 가끔 닥쳐왔다. 이를테면 살짝 바뀐 머리 모양이며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못 알아봐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일 따위였는데 복병은 다양했다. 얼마 전에도 만난 지 5분 만에 S의 표정이 굳어지자 L은 바짝 긴장했다. 그러자 S가 표정을 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 이 넥타이 누가 골라준 거야? 꽤나 잘 어울리네?” 순간 L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아, 이게 S가 사준 건가? 긴가민가하네.’ 그러나 차마 반문하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L은 남자다.

소설가·『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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