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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기금 냈다고 조사를 받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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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해석
호남취재팀장

옛날 중국에서는 종(鐘)을 만든 뒤 뿔이 곧게 나고 잘생긴 소의 피를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한 농부가 제사에 사용할 소의 뿔이 조금 비뚤어져 있자 바로잡기 위해 팽팽하게 동여맸다. 그러자 소는 뿔이 뿌리째 빠져 죽고 말았다. 교각살우(矯角殺牛). 조그마한 흠을 고치려다가 도리어 일을 완전히 그르치거나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전남 강진군이 설립한 군민장학재단은 올해 12억원의 기금을 모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9월도 다 간 현재까지 모은 기금은 4억원 남짓이다. 목표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적을 때도 연간 15억원 이상 걷히던 게 지난해 약 9억원으로 확 줄더니 올해는 반 토막이 날 조짐이다. “장학기금을 내거나 거뒀다고 칭송받기는커녕 경찰에 조사당하는데 누가 기금을 내고 거두려 하겠습니까.” 장학재단 관계자가 한숨을 쉴 만도 하다. 기금 확충이 안 되면 학생들에게 가는 장학금도 줄고, 우수한 교사도 초빙하지 못한다.

 강진군과 황주홍 군수는 2009년 9월부터 감사원과 경찰의 감사·수사 대상이 됐다. 지역 기업 등으로부터 장학금을 강제적으로 모금하고, 장학기금을 유용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다. 황 군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제보가 들어온 이상 경찰과 감사원이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감사는 세 차례나 이어졌다. 2년여간 감사에 시달렸다. 감사원의 고발로 경찰 수사도 두 차례나 이뤄졌다. 지난 2년여간 강진군은 힘센 기관 상대하느라 군민을 위한 서비스에 주력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결론이 났다.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종결했기 때문이다. “일부 위법행위가 있었지만 기소에 따른 실익이 없고, 다른 지역 장학재단도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강진군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검찰이 기소 유예 결정을 내리면서 밝힌 이유다. 황 군수와 강진군이 감사원 및 경찰과의 긴 싸움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싸움의 후유증은 장학기금 기탁 급감 등에서 보듯 심각하다.

 그나마 강진군은 명예를 회복했기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황 군수는 ‘과잉 감사·수사’라며 신문에 의견 광고를 내고 1만5000여 명의 국민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를 두고 감사원과 경찰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 군수와 강진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지방자치단체에 비하면 감사원은 큰 권위를 갖는다. 경찰은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수사와 감사는 처음부터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힘이 센 두 기관은 누구로부터, 어떤 제보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수사와 감사를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성과는 없었다. 대신 피해는 공부하는 학생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돌아갈 것이다. 뿔이 뽑힌 소는 억울해도 말을 못 할 뿐이다. 칼을 공명정대하게 휘둘러야 권위가 서는 법이다.

이해석 호남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