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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부자 아빠 따라 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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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철호
논설위원

환율은 치솟고 증시는 주저앉았다. 서울 금융시장에서 공포 그 자체가 공포가 됐다. 비관론자들은 “부동산과 가계대출이 붕괴돼 대재앙을 맞을 것”이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일 때 (경제) 위기를 두 번 맞는 게 다행”이라며 자신감을 뽐냈다. 아마 진실은 양 극단보다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다만 과도한 자기비하(自己卑下)는 몸만 상한다. 만약 나보고 선택하라면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정부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현재와 과거 경제 위기를 비교해 보면 3가지 다른 현상이 눈에 띈다. 우선 외신들의 한국 때리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의사 문턱을 오가는 미국·유럽이 잠시 유탄(流彈)에 비틀대는 한국을 나무라기엔 염치가 없다. 둘째, 굳이 트집 잡을 구석도 잘 안 보인다. 외환위기 때는 대기업의 과잉투자, 리먼 사태 때는 과도한 단기 외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위기 때마다 달러 가뭄을 부른 경상수지와 서비스 수지 적자도 사라졌다. 경상수지는 13년 연속 흑자고, 외환보유액 역시 여유가 있다.

 우리 경제를 지나치게 어둡게 보는 이유가 궁금하다. 비관론자들은 아파트 값 폭락을 외치지만 전국 땅값이 꾸준히 오르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환율 급등도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돼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고, 또 달러가치가 오른 만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는 현실도 살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아무리 취약해도 마냥 자유낙하 할 만큼 허약한 체질은 아니다. 만약 비관론자들의 예언대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진다면 미국·유럽 경제는 이미 오래 전에 망했어야 옳다. 그나마 전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멀쩡한 곳은 한국·중국이 포진한 아시아밖에 없지 않은가.

 냉정하게 보면 그리스 위기도 큰 고비를 넘긴 조짐이다. 그리스의 국채 만기는 9월에 집중돼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만기 물량이 줄어든다. 독일의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선언에 따라 그리스의 전면적 디폴트라는 악몽은 피했다. 그동안 서울 금융시장의 과민반응이 머쓱해지게 됐다. 9월 들어 유럽자본이 보유주식의 1% 남짓 팔고 나갔는데 서울 증시는 패닉에 빠지고 원화 환율은 130원이나 치솟았다. 워낙 다급해 서울 시장을 떠나는 유럽 투자자들이 자꾸 아쉬운 듯 뒤돌아보는 이유도 짚어봐야 한다. 길게 보면 아시아를 이탈해도 앞으로 머물 곳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재정위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유럽에선 먹을 게 없다. 제로 금리와 저성장의 미국에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는 ‘부자(富者) 따라 하기’도 현명한 선택 중의 하나다. 한국에선 단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주목 대상이다. 고급 정보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정면승부를 펼치는 인물들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와 차원이 다르다. 최근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 회장은 “글로벌 경기침체는 당분간 이대로 가지 않겠나. 그래도 열심히 해서 세계 1위를 계속해야지”라며 공격형 경영의 각오를 다졌다. 지난주 유럽 현장을 순방한 정 회장은 “유럽 위기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라고 주문했다. 현대차는 유럽에 전략형 신차를 쏟아내며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미국 발언도 정치적으로 비난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괜찮은데 국내에선 그걸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대목은 밑줄 치며 읽었으면 한다. 눈 밝은 독자라면 2008년 11월 24일의 LA 교민 간담회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코스피 지수가 900선까지 밀렸을 때 이 대통령은 과감하게 “지금 한국 주식을 사면 1년 뒤에 부자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 매수 추천에 따랐다면 지금도 두 배 장사는 했다. 난세에 영웅 나고 불황에 거상(巨商) 난다고 했다. 지나친 비관론에 휩쓸려, 이 쓰나미가 지난 뒤 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으며 땅을 치는 비극은 없었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