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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예산의 정치학 … 불만을 공평하게 나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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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예산통으로 꼽히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공평하게 예산을 편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예산 편성을 두고 ‘불만의 공평 분배’라는 말을 즐겨 썼다. 모자라는 재원을 쪼개 쓰다 보면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은 지출 측면에서 허리띠를 확 졸라맸다. 내년 지출 증가율은 5.5%로 총수입에 비해 4.0%포인트 낮게 잡았다. 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의무지출 증가율이 8% 수준임을 감안할 때 재량 지출의 증가를 상당부분 억제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2013년에 균형재정을 조기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예산의 큰 그림도 이를 따른 것이다. 내년과 2013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각각 32.8%와 31.3%로 올해보다 내려간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2007년(30.7%) 수준으로 나랏빚 부담을 줄여놓고 정권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재정건전성이 일시에 나빠졌지만 임기 말까지 이를 만회하겠다는 정책 의지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가 재정운용의 전제로 삼은 내년 성장률은 4.5%다. 반면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주 내년 성장률을 4%대에서 3.6%로 하향 조정하는 등 주요 연구기관들은 내년 전망치를 내려 잡고 있다. 그런데도 국세 수입은 9.7%로 늘려 잡았다. 세수 전망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 내에서 예산실과 세제실의 샅바싸움이 벌어졌지만 결국 세제실이 양보했다. 세제실은 원래 보수적으로 세입을 전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한 ‘균형재정’ 대원칙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재정부 일각에서는 ‘노력 세수(稅收)’를 감안하면 무리한 전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력 세수’란 세무행정 차원에서 국세청이 바짝 조이면 세수가 어느 정도 늘어나는 효과를 말한다. ‘노력 세수’는 원칙 없는 ‘고무줄 세정(稅政)’의 공무원식 조어일 뿐이다.

 무리하게 지출을 틀어막은 부분도 눈에 띈다.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은 4.8%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산업·중소기업·에너지와 농림수산식품 분야는 각각 1.0%, 환경은 2.4%, 문화·체육·관광은 2.7% 증가하는 것으로 잡았다. 나라 곳간을 채워 정권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야당 반응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이래서다. 민주당은 26일 “정부 예산안대로 하면 내년 초 추경 편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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