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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산책] 여자농구 MVP 김영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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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김영옥·정경모 부부가 17일 드림랜드에서 회전목마를 타며 모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김영옥은 "바이킹이나 독수리 요새 같은 어지러운 놀이기구는 질색"이라고 했다. 김영옥의 시부모도 며느리를 응원하는 열렬 팬이다. 김성룡 기자

"챔피언결정전 MVP는…김-영-옥."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김영옥(31.우리은행)이 트로피를 받는 동안 장충체육관 관중석 구석에서 한 남자도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남편 정경모(35)씨다.

2005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가 우리은행을 통산 세 번째 챔피언으로 만들고 막내린 지난 16일. 팀은 정규리그 1위에 챔피언결정전(삼성생명에 3승1패)까지 휩쓸어 '통합우승'을 했고, 김영옥은 정규리그와 챔피언전 MVP를 독식했다.

리그가 진행된 79일 동안 '기러기' 신세였던 부부는 17일 만났다.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농구단 합숙소 부근 드림랜드. 범퍼카를 타고, 회전목마를 달리며 두 사람은 모처럼 신났다. 리그 동안 외박은 설날 딱 하루뿐이었다.

# 지옥생활 뒤의 달콤함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있었어요." 김영옥에겐 사연 많은 시즌이었다. 지난해 소속팀이던 현대건설이 해체되고 신한은행으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된 그다. 우리은행 선수 세 명과 맞바꾼 것이긴 하지만 충격은 컸다. 해체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밥 사주며 "죽어도 같이, 살아도 같이 살자"고 챙겼는데 정작 본인이 퇴출된 거다.

서른이 넘어 낯선 팀에 간 그를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육상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이준 체력담당 고문은 히딩크가 2002월드컵 축구대표팀에 했던 '공포의 삑삑이(속도를 점점 빠르게 하는 왕복달리기)'를 시켰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오리걸음도 쉼없이 했다. "먹은 걸 다 토해낼 만큼 혹독했지요." 보직도 슈팅가드에서 '야전 사령관'인 포인트가드로 바뀌었다. 그 모든 걸 이겨낸 뒤에 찾아온 열매가 달콤하기만 하다.

# 무술 18단의 부드러운 남편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남편 정씨는 '무인'이다. 태권도와 합기도가 4단씩이고 다른 무술까지 합쳐 18단. 보성고 야구선수였고, 용인대(합기도 전공) 졸업 후에 골프를 배워 티칭 프로를 할 만큼 운동에 만능이다. 한데 두 사람은 서로 '운동권'인 줄 모르고 만났다. "2001년 친구들 모임에 합석한 자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얌전하고 순해 보였지요. 직업을 묻자 '건설회사 다녀요'라고 하더라고요(팀이 현대건설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나중에 농구선수인 걸 알았지요." 둘은 2003년 3월 부부가 됐다. "늘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데 전 아내 역할을 못해 고맙고 미안해요."(김영옥)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김영옥은 육상선수를 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로 바꿨다. 작았지만 엄청나게 빨랐고, 슈팅이 워낙 좋았다. 여자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 '총알낭자'란 별명이 만들어졌다.

# 친자매보다 가까운 전주원

현대건설 시절 그는 당시 최고스타 전주원(33)에게 가려 있었다. 그래도 전주원의 송곳 패스 덕분에 슈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지금도 친자매처럼 가깝다. 지난해 11월에는 두 가족이 동업으로 서울 삼성동에 '스시하루'라는 회전초밥집도 차렸다.

김영옥은 딸을 낳은 전주원이 신한은행 코치에서 선수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반갑긴 하지만 언니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자기도 전주원처럼 '덜컥 임신'으로 농구공을 놓아야 할 상황이 오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코칭스태프가 더 신경을 쓴다. 박명수 감독은 잠깐 외출을 내보낼 때도 "밥만 먹고 와"라고 농담한다.

# 신경쓰이는 한.일 챔피언전

시즌은 끝났지만 김영옥은 맘 놓고 쉬지 못한다. 23일과 26일 일본 여자실업농구 우승팀인 샹송화장품과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벌일 '한.일 챔피언전'이 있다. 가뜩이나 독도 문제로 반일 감정이 들끓고 있어 더 신경 쓰인다. 그 경기가 끝나면 우리은행 선수단은 필리핀의 한 섬으로 우승 보너스여행을 떠난다. 그 사이 시댁(서울 노량진)도 가고, 방송 출연도 해야 하니 둘만의 시간은 좀 더 기다려야 할 참이다.

글=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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