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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경제적 풍요속의 미국인 마음은 병들어 간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역사는 모순으로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인은 ‘물질’과 ‘정신’(특히 종교)
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진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자기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한 미국인이 61%에 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소비 잔치를 벌였다. 1995∼1999년 미국인은 승용차·소형트럭 7천7백만 대, 새 집 8백만 채, PC 5천7백만 대, 휴대폰 6천4백만 대를 구입했다.

모순은 미국 문화의 특징이다. 메릴 린치社는 지난주 미국·캐나다의 1백만 달러 이상 재력가 수가 1997년 이래 거의 40%나 증가해 현재 2백5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주식투자에 대한 미국인의 집념은 거의 정신병적 수준에 이르렀지만 막상 막대한 돈을 번 신흥 부유층 가운데는 그 돈 때문에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심리치료사 스티븐 골드바트는 그런 사람들이 지나친 죄책감과 정체성 혼란이 특징인 ‘벼락부자 증후군’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미국의 가장 큰 문제가 도덕 문제라고 생각한다. 1999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대 걱정거리는 범죄, 선출공직자의 비리, 약물 남용, 가정 파괴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포겔은 신간 ‘제4의 각성 운동과 평등주의의 미래’(The Fourth Great Awakening & The Future of Egalitarianism)
에서 정신과 물질의 갈등이 미국 역사에서 반복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조건과 기술의 변화가 도덕적 가치와 충돌해 정신적 위기, 사회적 개혁, 정치적 격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 경제 현실에 도덕적 체계를 부여하려 한다. 포겔은 지금까지 네 차례 이런 종교적 ‘각성’의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각성은 각각 1730년·1800년·1890년·1960년께 시작됐으며 대중의 사고방식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겔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은 삶의 형태를 바꿔놓음으로써 도덕적 재평가를 촉진한다. 예를 들어 1810년 이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항해는 길고(30일)
위험했으며(승객 10∼20%가 목숨을 잃었다)
비쌌다(뱃삯이 노동자 1년 수입과 맞먹었다)
.

1860년께에는 여행에 걸리는 시간이 7일로 줄었고 비용과 위험도 10분의 1로 감소했다. 여행길이 싸고 안전해지자 이민이 늘었다. 그 결과 미국에 혼잡한 대도시가 생겨났으며 도덕적 위기감이 팽배했다.

포겔은 1800년대 초의 종교적 각성 운동이 “누구나 죄와 싸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때 정치인들은 전국민 교육과 금주법 제정 같은 목표를 세웠다.

1890년대에는 초점이 개인의 죄악에서 사회의 죄악으로 바뀌었다. 빈곤의 책임은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었다. 이때에도 기술이 도덕적 분노와 정치적 변화를 자극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미국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850년에는 수백 개의 기업이 제철산업을 이끌었지만 1880년에는 단지 13개의 대형 공장에서 모든 철강이 생산됐다. 사람들은 생산현장에서 쫓겨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고통받았고 도시 빈민가는 늘어만 갔다. 그 결과 제3의 각성 운동이 일어나 현대 복지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물론 포겔의 이론은 너무 획일적이다. 노예제 폐지운동은 제2의 각성 운동에 속하지만 기술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미국 독립 이전의 제1의 각성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포겔 자신도 1930년대 이래 활성화된 복지국가 개혁운동이 곧 종교적 출발점에서 멀어져 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새 경제질서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이 종교와 도덕적 신념을 거기에 맞추려 했다는 그의 기본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포겔은 현대에는 풍요로부터 심각한 불안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현대인은 1백 년 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고 일의 양이 줄었기 때문에 여가는 폭발적으로 늘었다(1880년 노동자는 평균 주 6일, 하루 11시간 일했다)
.

그러나 풍요가 개인적 성취를 보장하거나 사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포겔은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신적 측면에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수양·목적의식·소속감 등이 뛰어나지만 어떤 사람에게서는 이런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자질들은 시장에서 구입하거나 정부의 프로그램으로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주로 가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포겔에 따르면 제4의 각성 운동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도덕적 문제를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종교적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졌다.

지난주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10대가 흡연·음주·폭력·자살·마약 등의 문제를 겪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통계를 내보이며 자랑했다. 그의 언급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0년 전의 사정은 크게 달랐다.

당시 댄 퀘일 부통령은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높이 살 만한 일은 아니라고 한 말 때문에 심한 비웃음을 당했다.

포겔의 메시지는 물질주의가 자유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풍요는 더 많은 자유를 주기 때문에 근심을 낳는다. 우리는 갈수록 자유로워지지만 마음대로만 행동한다면 무절제한 방종으로 빠지거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자유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의 적이 우리 자신인 경우가 많다. [뉴스위크=Robert J. Samuelson 뉴스위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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