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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중심의 현대사회를 꼬집는 〈백치들〉

중앙일보

입력

이전엔 마을마다 어린 아이들이 돌팔매를 해대는 '모자라는' 어른이 한 명씩은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몰려다니며 노는 아이들 문화가 사라진 탓인지, 아니면 '모자라는' 어른의 집 밖 출입이 어려워진 탓인지 이런 광경을 볼 기회가 흔치 않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미치광이(광인)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보통 사람들의 사회에서 배제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문명이 형성되면서부터라고 주장했다.

그 전에는 미치광이를 '별종 인간' 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보다 지능이 크게 떨어지는 정신지체자들을 '특별하게' 보고 때로 집단적으로 따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 아닐까 싶다.

영화 '백치들(idiots)' 은 이같은 비판 의식에서 출발한다.

"네 안에 있는 백치성을 드러내라". 영화 '백치들(The Idiots)' 이 내세우는 주장은 인간의 정신이 이성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며 우리가 두려워하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바보' '멍청함' 이야말로 현대인이 잃어버린 순수성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킹덤' 에서도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의 순진함과 단순함을 그렸던 덴마크 감독 라스폰 트리에는 '백치들' 에서 보다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코펜하겐 교외의 저택에 젊은 남녀가 하나 둘 모여든다. 의사.화가.광고업자 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백치' 가 되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교육받고 훈련받은 예법과 매너와 자제심을 몽땅 버리고 대신 가능한 최대치의 우둔함을 끌어내어 실천하기로 하는 것이다.

포크 대신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으로 질질 흘리면서 식사를 하고, 다리가 멀쩡한 데도 휠체어에 머리를 꼬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남의 시선엔 아랑곳없이 옷을 훌렁 벗어 알몸으로 다닌다.

특히 생일 파티에서 벌이는 난교는 이들의 행위에 실오라기 만큼의 거짓도 없음을 믿게 만드는 영화의 절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이같은 '바보 게임' 에 얼마만큼의 진실성이 있을까라는 의문에 빠진 주인공들은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 돌아가서도 '백치' 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현실 세계' 는 이들의 백치성을 비웃을 뿐이다.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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