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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군 성희롱 사건이 ‘야한 복장’ 때문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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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희롱(性戱弄)의 정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육체적·언어적·시각적 행위 및 사회 통념상 성적(性的) 굴욕감을 유발하는 언어나 행동”을 성희롱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특정 신체 부위를 음란한 눈빛으로 반복적으로 쳐다보는 행위’라는 성희롱 예방 지침안이었다. 그중 ‘음란한 눈빛’이 논란이 됐다. ‘추파(秋波)’라는 심리적 상태에 어떻게 법(法)이라는 규율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결국 ‘음란한 눈빛’이란 규정은 성희롱에서 제외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게 1999년 얘기다. 2011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우리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20일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성(性) 군기 사고 예방 교육 자료(DVD)’가 도마에 올랐다. ‘노(no)라고 말하세요’란 코너에서 상급자가 손을 자꾸 만지는 등의 행위가 예시됐다. “혹시 제가 오해한 것 때문에 기분 나빠하실까 걱정이 되지만, 물론 대대장께서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겠지만, 저는 조금 불편해요…”라고 말하도록 돼 있다. 또 초임 여군 군생활 안내서에는 “군대 회식 나갈 때 야한 복장은 성(性) 군기 사고를 유발한다. 애교스러운 말투와 농담을 자제한다. 화려한 의상을 자제하라”고 했단다. 60년대 흑백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야한 복장’ ‘애교스러운 말투’의 기준이 뭔가. 또 성 군기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발상이 기가 막힌다.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여기엔 성희롱 방지를 위한 조항도 있다. 군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남녀차별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법원이 여성의 종중(宗中)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게 2005년이다. 최근 세법(稅法)도 바뀌었다. 친족관계에서도 남녀차별을 없앴다. 이게 세상의 이치고, 흐름이다. 군대가 특수한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쳤다. 지휘부의 성차별적인 인식부터 바꾸지 않고는 성 군기 사고를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