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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피눈물 막아주는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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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한국 소설에 등장한 최초의 ‘은행 고객’은 최찬식의 소설 『금강문』(1914)의 김경원 모친이라고 한다(최원식, 『한국 계몽주의 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추월색』(1912)으로 유명한 최찬식은 근대화 초기의 조선 현실을 ‘권선징악’의 대중적 코드로 그려내던 작가다. 『금강문』에서 경원의 모친은 재산 중 현금 9000원을 ‘천일은행(天一銀行)’에 예치해 둔 은행의 우수 고객이다. 이 은행은 실제로 대한은행소, 한성은행, 제국은행, 대한은행 등에 이어 1899년에 설립된 한국의 초창기 민족은행이었다.

 결혼 후 가산(家産)이 크게 늘어난 김교원 내외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슬하에 자녀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딸 경원을 얻게 된다. 세월이 흘러 경원의 부친이 사망한 후 모친 역시 병이 깊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모친은 경원에게 유언을 남긴다. 그 유언 내용의 마지막이 “은행에 저축한 돈 구천원과 김포 전장(田庄) 백여 석낙을 네가 모두 상속하여 가지고 네 평생 조상의 향화(香火)나 받들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원의 모친이 사망한 뒤 경원의 외숙이 나타나 그녀의 유산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외숙은 경원에게 자신이 장례 절차를 알아서 다 해주겠다며 은행 예금을 인출하기 위한 소절수와 도장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한다. 그러나 경원이 이를 거절하자 외숙 부부는 그녀를 원래의 정혼자와 파혼시킨 뒤 자신들 입맛에 맞는 구소년에게 시집 보내어 그녀의 유산을 가로챌 계략을 꾸민다. 이들의 흉계를 눈치 챈 경원은 집을 뛰쳐나와 전국을 떠돌게 된다. 갖은 고생 끝에 경원은 정혼자와 재회하고, 외숙 부부는 체포되어 그들의 만행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릴 뻔했던 재산도 재판소에 청원하여 찾았다.

 어리고 힘없는 경원이 자신의 유산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이라는 근대적 금융기관과 국가가 그녀의 재산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경원의 모친이 현금을 집 안에 쌓아 두지 않고 은행에 넣어둔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경원이 홀로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산을 굳건히 보호해줄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금융기관들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 부실 상호저축은행들이 적발되어 영업정지를 당했다. 연초에도 불법 대출 등 구조적인 금융 비리를 저지른 자들 때문에 서민들이 평생 어렵게 모은 ‘피 같은 돈’을 잃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이런 시대에 경원이가 태어났다면, 그녀는 자신의 유산을 지킬 수 있었을까?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