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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난 서울 성곽 잇는 아버지와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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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5년째 함께 서울 한양도성 복원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강신각(오른쪽)·석주 부자가 현재 공사 중인 월암 근린공원 내 성곽을 둘러보고 있다. [김도훈 기자]

“마구잡이로 돌을 갖다 올려놓는 게 아니거든. 모든 걸 제자리에 놨을 때 비로소 아귀가 딱 맞게 돼.”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송월동 월암 근린공원 내 한양도성 복원공사 현장. 석공(石工) 강신각(71)씨가 완공된 성곽을 따라 걸으며 마지막으로 보수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 훑고 있었다. 그는 연신 성곽을 가리키면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이어 갔다.

구릿빛 얼굴에 체격이 좋 은 이 남자는 강씨의 현장 파트너이자 장남인 석주(41)씨다. 신각씨는 36년 전부터, 아들 석주씨는 15년 전부터 한양도성 복원 현장을 지켜왔다.

 “19세 때 밥벌이를 찾아 고향인 충남 예산을 떠나 서울로 왔어. 그러다 수원 채석장에서 처음 망치와 정을 잡게 됐지.”

 신각씨는 1968년 당시 문교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석공 자격증을 딴 뒤 75년 창의문~숙정문을 연결하는 공사에 처음 참여했다. 그 후로 36년간 북악산·인왕산 등에서 성곽을 복원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신각씨의 1남2녀 중 장남인 석주씨는 어릴 때만 해도 고된 일을 계속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말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곽 복원에 열성을 다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석공이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15년 전 아버지를 따라 석공이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아버지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며 아들에게 다른 선택을 고민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돌 하나를 다듬을 때도 혼을 다해야 합니다. 장인정신이 없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지요.”(신각씨)

 아버지는 현장에서는 엄격한 스승이다. 성곽 복원은 소실돼 일부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을 바탕으로 돌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가까운 포천에서 무게 400~500㎏의 화강암을 가져온 뒤 쪼개고 다듬는다. 그 다음 한 단 한 단 쌓고, 그 사이에 잡석과 강회(剛灰)를 넣어 빈틈없이 메운다.

 신각씨의 오른쪽 손엔 손가락 마디 아래서부터 손목 바로 위까지 긴 흉터가 있다. 오랜 세월 망치질로 생긴 굳은살 때문에 15년 전 손바닥을 찢어 굳은살을 제거한 것이다. 석주씨도 허리와 다리 등에 통증이 심하다. 이런 두 사람을 지탱해 온 건 이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이었다고 한다. 또 서울의 성곽을 자신들의 손으로 복원한다는 자부심이다.

 “서울 한양도성엔 아버지의 평생이 녹아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 작업을 함께 완성하고 싶어요.”(석주씨)

 “성곽 복원에만 매달리느라 아들이 아직 짝을 못 만났어. 어서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하는데….”(신각씨)

 부자가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성곽의 능선을 따라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서울 한양도성길=북악산과 인왕산·남산·낙산을 연결하는 성곽길. 조선 태조 때 만든 것으로 총길이 18.627㎞에 달한다. 일제강점기와 경제 개발시기를 거치며 훼손된 구간을 서울시가 1975년부터 복원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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