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 37억 … 세종연구소 곳간 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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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 최대 민간 싱크탱크로 꼽히는 세종연구소가 방만한 운영과 부동산 투자 실패로 운영자금을 거의 다 탕진했다. 2005년 250억원가량이던 이 연구소의 운영기금은 8월 현재 37억원가량만 남아 연말까지 인건비도 댈 수 없는 형편이다.

 1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이 공개한 세종연구소의 ‘기본재산 매각사유서’(8월 25일 작성)와 ‘세종재단 임시이사회 회의록’(7월 25일)에서 드러난 현주소다.

 정 의원은 “세종연구소는 최근 수년간 재단 기금으로 부동산 투자에 손댔다가 170여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그래 놓고 올해 8월 외교통상부에 ‘운영자금이 없어 재단 운영이 불가능해진 만큼 연구소 부지를 매각하고 장기신탁으로 묶여 있는 기본기금을 쓸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신청했다”고 밝혔다.

 문건에 따르면 연구소는 2000년 이후 이자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금의 이자만으로는 운영자금을 댈 수 없게 되자 직접 수익사업에 뛰어들어 재정 부실을 자초했다. 2005년 6월 경기 의정부 리조트 개발에 100억원을 기획부동산(PF) 방식으로 투자했다가 77억5000만원을 회수하지 못했으며, 2008년 6월엔 러시아의 부동산 개발 펀드에 60억원을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을 봤다. 이 60억원 중 36억원은 ‘아웅산 희생자 유가족기금’에서 가져다 쓴 돈이었다.

 연구소는 또 2006년부터 부지 내에 90타석 규모의 3층짜리 골프연습장 임대사업을 하다 임대업체가 부실해지면서 지난해부터 1년8개월여간 임대료 13억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엔 이 임대업체에 20억원을 빌려 줬다가 전액 떼였다. 연구소재단 측은 ‘사유서’에서 “펀드 투자 손실 137억4000만원은 회수를 기약할 수 없고, 골프연습장 부실로 임대료 및 대여금 33억원은 회수가 불가능해 당장 재단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세종연구소는 전두환 정권의 일해(日海)재단 후신이다.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테러가 발생하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희생자 유가족을 돕자는 명분으로 일해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84~87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포함한 대기업 회장들에게 거둔 헌금 598억원 중 500억원을 재원으로 88년 연구소가 출범했다. 경기도 성남시 시흥동 연구소 부지(6만2861㎡)는 당시의 현대그룹이 기증한 것이다. 막대한 재원으로 탄생한 역사를 가진 세종연구소는 설립된 지 23년 만에 ‘빈 깡통’이 된 것이다.

 정 의원은 “부실 투자로 세종연구소를 파산 지경까지 이르게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고,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손실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겠다”고 답했다.

정효식 기자

◆세종연구소=외교안보·국제정치 등 대외정책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 연구소. 1983년 12월에 만들어진 일해재단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88년 국회의 ‘5공 비리 청산 청문회’ 대상이 됐고, 이후 세종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어 명맥을 유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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