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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정전대란, 이래서 터졌다 ③ 수요 빠르게 느는데 공급은 늘 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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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금에야 대형 정전 사고가 터진 게 신기할 따름이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다.”

 전국적인 정전 사고가 터진 다음 날인 16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수일(사진)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전력의 수요와 공급 여건을 생각하면 위태위태한 상황이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지난해 지식경제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용역을 담당했던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우리나라의 전력 예비율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줄곧 하락 추세였다”고 했다. 고장 등을 감안한 공급 예비율은 2003년 17.1%에서 2011년 1월 5.5%까지 떨어졌다. 워낙 전력 수급이 빠듯하다 보니 수요예측을 조금만 잘못해도 이런 일이 발생할 위험이 점점 커져 왔던 것이다. 이 위원은 “설비 예비율은 15~18%가 적정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력 예비율은 왜 계속 하락했을까.

 우선 공급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인 전력수요를 항상 과소추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게 이 위원의 평가였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장기 전력수요를 예측한 뒤 15~18%의 전력 예비율을 달성할 수 있는 선에서 발전소를 세우게 된다. 그런데 장기 전력수요를 과소추정하다 보니 발전설비를 충분히 건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발전설비 측면에서 LNG복합발전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민간사업자들이 계획을 철회한 경우도 잦았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발전설비가 필요한 만큼 건설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위원은 “민간사업자의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수요 측면도 문제였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은 ‘시장원리’ 그대로 전력 수요를 키웠다. 이 위원은 “전력요금 현실화가 물가 등 거시경제 목표 때문에 당장 힘들다면 실시간 요금제라도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시간 요금제는 ‘똑똑한’ 계량기를 통해 전기 소비자에게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요금(한계비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을 때는 발전단가가 싼 원전 전기를 쓰지만 전력 피크 때는 추가로 발전단가가 비싼 가스발전에서 나오는 전기가 들어간다. 생산비용이 비싸다면 그 정보를 가격에 반영해 전기 수요자가 가격에 반응해 수요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지금처럼 당장 누군가에게 정전사태의 책임을 묻는 데에만 신경 쓰면 정작 진짜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며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이번 사태의 정확한 배경과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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