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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에 최선 다했다면 결과엔 책임 안 묻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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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4면

김승유 회장은 1943년생.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창립 멤버다. 하나은행장 시절 충청·보람·서울은행을 인수합병(M&A)해 후발주자였던 하나은행을 은행권 빅4로 키워냈다. 2005년 12월 하나금융지주 설립 이후 회장을 맡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와의 경영콘서트 두 번째 주인공은 김승유(68)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의 창립 멤버였던 그는 40년 하나은행 역사의 산증인이다. 경영철학과 한국 금융의 미래에 대한 그의 강연을 지상 중계한다.

IGM과 함께하는 경영콘서트 ②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여든 살에 이코노미 타는 이나모리 회장
저는 1965년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금융업계에만 몸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반쪽 짜리죠. 다른 분야를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어떤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는 이나모리 가즈오(<7A32>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분에 관해 뇌리에 각인된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지 포춘 85년 1월호 기사입니다. ‘일본의 독재경영’이라는 제목과 연미복을 입은 교세라 임원들이 90도로 절을 하는 사진이 났습니다. 정월 초하루 아침 납골당을 찾아간다는 겁니다. 일본 기업문화가 직원들에게 철저한 조직원이기를 요구하지만 죽은 다음엔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교세라에선 죽은 다음에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화장(火葬)한 유골까지 회사 납골당에 모시는 거죠.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기사입니다.
일본의 경영에 대해 지분의 10%밖에 안 가진 사람들이 원맨쇼하듯 의사결정한다는 비판이 있어요. 그래서 독재경영이라는 건데, 전 생각이 다릅니다. 일본인의 공동체의식·집단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을 모르는 것 같아요. 나름의 경영철학이 있는 것이죠. 사훈(社訓)·사시(社是)는 사무실에 걸어 놨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추구하는 방향이 뭔지 구성원 간에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나모리 회장은 직접 보여 주는 분이죠. 그가 지난해 일본항공(JAL) CEO로 복귀했어요. 27세에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65세에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분입니다. 그런데 여든이 다 된 나이에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려 달라는 정부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이분이 교토에서 도쿄로 일주일에 두 번씩 왔다 갔다 한답니다. 반드시 이코노미클래스를 타고요. 퍼스트클래스를 타면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없다는 거죠. 27세의 창업정신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처음 (하나은행이) 설립됐을 때 20명밖에 없었어요. 다음 해 업무계획을 세우면 전 직원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어요. 여상을 갓 졸업한 여직원에게도요. 신입직원은 무슨 얘긴지 모르다가도 듣고 나면 ‘한몫해야겠구나’라고 참여의식을 갖게 됩니다. 170~180명으로 조직원이 늘었을 때도 1박2일로 밤새 토론을 했어요.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한 각자 목표를 만들고 머리를 짜내는 거죠. 그 덕에 조직이 이만큼 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1만5000명쯤 되니까 그렇게는 못 합니다. 대신 부서별로 의견을 모으는 대표를 뽑아 대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전 이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경영철학이나 이념은 구성원 간의 동의를 바탕으로 할 때 가장 의미 있습니다.

‘금융의 삼성전자’ 이제는 때가 됐다
왜 한국엔 금융의 삼성전자가 없냐고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금융은 신용이라는 무형자산을 파는 회사다. 삼성전자는 보이는 제품을 파는 회사다. 제품을 잘 만들고 값이 적절하면 세계 시장에서 먹힌다. 하지만 분단 상황이나 지금까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등 한국의 신용을 저해하는 요소가 많아 아직 (금융의 삼성전자는) 어렵다’. 그런데 제가 지난해부터는 때가 됐다고 얘기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게 상상이나 했던 일입니까. 이젠 국가 경쟁력이 그만큼 올랐으니 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미국 대학의 미식축구 잘하는 상위팀을 보면 자기 대학 출신 감독을 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건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하나·국민·우리은행이 중국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영국·미국계 은행들과 달라요. 영·미 은행 현지 법인 은행장은 전부 중국인입니다. 한국·일본 은행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서 직원을 보내면 주거비·자녀교육비 등 연봉보다 많은 돈이 듭니다. 그 비용으로 현지인을 채용하면 뛰어난 사람을 뽑을 수 있어요. 그런데 ‘로열티가 없어 안 된다’고 말하죠. 과연 그런 각오도 없이 국제금융이 되겠습니까. 사람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죠. 국내에서 제로섬 게임이나 해야 하는 겁니다.

스탠다드차터드(SC)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할 때 국민은행이 SC보다 작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SC가 곱절입니다. 자산이 곱절인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SC는 자산이 커지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중동·인도로 시장도 넓혔어요. 그러면서 한국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었고요. 제일은행 인수 당시 SC 전체 비중의 약 28%를 한국이 차지했어요. 지금은 20%로 낮아졌습니다. 다른 시장이 커졌으니까요. 그런 운용능력이 아직 우리에겐 없는 거죠.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기업의 장기 전망을 보고 분석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젠 담보력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어요. 과거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니까 나중에 공장을 들어내고 담보로 잡은 땅값만으로 부실을 메울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났죠. 기업의 초기 투자비용이 얼마가 필요한지, 고객을 얼마나 확보해야 망하지 않는지 금융회사가 정보로 축적해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 충분히 사업성을 검토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넘어가라는 겁니다. 잘해야 본전, 잘못되면 나만 책임지는 문화는 바꿔야 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잘못됐다면 책임을 묻지 말아야죠.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면 그때 용서하지 않으면 됩니다. 저도 반성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80년부터 31년간 금융회사 임원을 하고 있습니다. 유유자적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변하는 환경에서 다시 한번 비약하고 난 뒤 손을 털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늘 바뀌는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고객을 쫓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경영연구원(IGM·회장 전성철)은 매달 한 번 대한민국 최고 CEO가 중소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영구루 릴레이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2-2036-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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