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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스님, 뉴욕 교회서 마음의 화두를 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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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5일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진제 스님(가운데)이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하는 수행법)을 주제로 한국 선(禪)불교를 알리는 법문을 했다. 혜민 스님(왼쪽)이 동시통역을 했다. 오른쪽은 미국인 사회자.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는 유서 깊은 곳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넬슨 만델라·달라이 라마·틱 낫한 스님 등이 설교와 법문을 했던 곳이다. 뉴욕에선 종교와 사회의 소통과 포용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15일 오후 7시(현지시간) 이곳에서 한국인 스님으로선 처음으로 진제(眞際·대구 동화사와 부산 해운정사 조실) 스님이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간화선(看話禪)’을 주제로 법문을 했다. 진제 스님은 한국 현대 선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이다.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예배당 천장에는 고려시대 불화를 담은 대형 걸개그림이 걸렸다. 그 아래에 예배당의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른쪽 벽에는 ‘WORLD PEACE THROUGH ONE WORLD(한마음으로 세계평화를)’, 왼쪽 벽에는 ‘WHAT IS YOUR TRUE SELF BEFORE YOU WERE BORN?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이라는 선(禪) 문구가 펄럭였다. 이날 약 1500명의 청중이 법회를 찾았다.

 콜맨 리버사이드 교회 담임목사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자. 듣고, 듣고, 또 듣자(Listen, Listen, Listen!)는 말로 불교 선사를 초청해 법회를 여는 이유를 설명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축사에서 “진제 스님 법문이 여러 종교와 문화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이 되길 바란다”고 했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은 인종과 종교가 하모니를 이루고 사는 곳이다. 이번 법회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예배당 가운데 놓인 커다란 북이 울었다. ‘두둥 두둥 두리두리 둥둥둥!’ 교회 안이 쩌렁쩌렁했다. 법문을 청하며 제자들이 삼배를 했다. 법상(法床)에 오른 진제 스님은 주장자를 번쩍 들었다. “마음! 마음! 마음! 가히 찾기가 어렵다. 찾으려 한즉 그대가 가히 보지 못함이로다. 무심(無心)히 앉아 있으니, 마음도 또한 무심히 앉아 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미국 청중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선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법문은 동시통역으로 전달됐다.

 스님은 법회의 의미를 짚었다. “지금 산승(山僧·스님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 어떤 종교가 더 낫다는 얘기를 하려고 여기에 선 것이 아니다. 이제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 서로가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 돼야 한다”며 “아이가 울 때도, 남편이 꾸짖을 때도, 마누라가 화를 낼 때도 화두(話頭·간화선 수행의 요체인 물음)를 들어보라. 진리에 대한 강한 물음이 이런저런 나의 일상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버린다”고 말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엊그제가 9·11 사태 10주기였다. 산봉우리에 구름이 걷히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밝은 달은 물길 위에 떠 있음이로다. 모든 영가(靈駕·영혼)는 이 한마디를 잘 들으소서”라며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 상처를 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법어를 던졌다. 비단 그들을 위한 메시지만은 아니었다.

 법문이 끝나고 질문도 날아들었다. “당신은 죽음이 두려운가?”라는 물음에 스님은 “중생의 눈에는 죽음이 있으나, 참 나를 깨달으면 죽음이 없다”고 답했다. “저는 명상의 초보자다.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가?”라고 묻자 “배 고프면 밥 먹고, 목 마르면 물 마실 줄 안다면 누구나 참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째 명상을 하고 있다는 미국인 베스 마운트(장애인 시설 근무)는 법문을 듣고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욕=글·사진 백성호 기자

◆리버사이드 교회=뉴욕시 할렘가에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 1930년 완공됐다. 뉴욕의 주요 관광지이자 정치적 토론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승만 박사가 재미 시절 최초의 한인교회를 꾸리며 빌려서 썼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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