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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각하고 경제개념 배우고 … 인정 넘치는 녹색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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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은 자원을 재활용하고 돈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은 물론 주민 간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건을 팔러 벼룩시장에 나온 아이들이 또래에게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조한대 인턴기자]

3일 오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동일하이빌 아파트 통행로에 왁자지껄한 시장이 들어섰다. 상인들이 아파트를 찾아 물건을 파는 장터와는 달리 주민들이 모여 만든 벼룩시장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주민이 고객이자 손님이다.

 아파트 벼룩시장이 물건만 사고 파는 곳이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는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천안 지역 3개 아파트 단지(신부동 대림한숲, 청당동 벽산블루밍, 용곡동 동일하이빌)가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벼룩시장을 연다. 천안녹색소비자연대, 입주자대표회의, 부녀회가 올 초 뜻을 모았다.

 가정마다 사용하지 않고 장롱 속에 보관하던 물건을 꺼내 재활용하면서 환경을 생각하고 저렴하게 쇼핑도 즐기며 에너지 절약 의식을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다.

 벽산아파트는 4월, 대림·동일아파트는 5월부터 시민단체와 함께 벼룩시장을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엔 주민들의 관심이 적었지만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면서 주민들의 호응도 높아졌다.

 중고지만 잘 고르면 싼 가격에 새것과 다름 없는 물건을 얻는 기회가 주어진다. 옷장 속에만 있는 옷, 거의 매지 않는 넥타이, 한때 열심히 사 모은 가방과 구두, 유행은 조금 지났지만 여전히 고급스러움을 주는 원피스 등 버리기에 아까운 멀쩡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티셔츠, 도서 세트, 만화책, 머리핀·머리띠, 인형, 필통, 연필, 샤프심, 장난감, 화장품, 만화책 등 여러 부류의 주민이 모여 사는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물건을 사고 파는 방법과 물건 고르는 법 등 돈의 가치를 배우는 산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김원태(38)·오지연(34) 부부도 소문을 듣고 자녀들을 데리고 장을 찾았다. 아파트 주민은 아니지만 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자녀들의 옷, 가방, 신발을 준비했다. 김씨는 “자녀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아이 이름의 통장을 선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천연비누 만들기, 천연 방향제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전자폐기물 제로 캠페인 부스가 차려졌다. 자원봉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환경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민들은 중고물품을 판매, 교환하면서 자원낭비를 막고 친환경 제품도 만들어 보며 환경과 에너지 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녹색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이들 아파트 단지는 전기에너지 10%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천안녹색소비자연대는 입주 가정을 대상으로 전기에너지를 절감하는 가정에 친환경 제품을 지급하고 있다. 주민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실천 방법, 전기에너지와 대기전력의 이해, 녹색구매, 공정무역과 지역 먹거리, 대중교통 및 걷기 실천하기, 환경세제와 천연모기퇴치제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인형, 가방, 신발.

그 결과 벽산아파트(1647세대)는 전년 동기 대비(4~9월분 사용료 기준) 6만 8522㎾, 동일아파트(826세대)와 대림아파트(908세대)는 각각 6만 5323㎾와 5934㎾ 전기에너지를 절감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벽산은 1027만원, 동일은 979만원, 대림은 89만원 이상의 절감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됐다.

이웃끼리 사고 팔고 인심은 ‘덤’

장이 열리기 30분 전부터 통행로엔 물건을 팔려는 아이와 어른들로 북적였다. 돗자리를 펴고 물건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모습이 장사꾼 못지 않은 분위기다. 팔 물건과 돗자리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몇 번 입히지 않은 아이들의 옷을 들고 나온 주부, 수공예로 만든 예쁜 리본핀을 모아 온 대학생, 동화책·인형·장난감을 한 가득 안고 나온 어린이 등 많은 주민들이 모였다.

 통행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좌판에 박희원(14)양과 친구들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230㎜ 신발이 단돈 2000원~ 정말 예뻐요.” “편지지가 400원, 이걸로 친구한테 편지 쓰면 감동해서 눈물을 흘려요. 하나 사면 하나 더 줍니다. 선착순이에요 구경하세요.” 손님(?)을 끌어 모으는 여중생들의 입담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렸을 때 입었던 티셔츠와 치마, 아끼다가 쓰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둔 편지지, 즐겨 읽던 동화책, 엄마가 처녀 시절 입었다는 재킷까지…. 박양과 친구들이 내놓은 것들이다. 물건이 팔릴 때마다 뿌듯함에 주머니 속을 자꾸 들여다 봤다. 박양은 “돈을 모아 친구들과 서울구경을 가고 싶다”며 웃었다.

 반대편 좌판에선 살아있는 물건(?)을 팔고 있었다. ‘살아있는 잠자리가 500원’. 강승연(10)·승민(8) 자매가 엄마를 따라 나왔다. 옆에는 동화책과 어린이용 자전거도 내놨다. 수줍음 많은 승민이가 언니들처럼 소리를 내지 못해 작은 메모지에 삐뚤빼뚤 금액을 적어놨다. ‘설마 팔리겠냐’던 엄마의 예상 깨고 10분 만에 2마리나 팔렸다. 아이들은 신이나 아파트를 돌며 잠자리 잡기에 나섰다. 승연·승민이는 “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남들에게는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물건을 팔아 모은 돈으로 엄마에게 선물을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유경(40)·허경아(38)씨도 자신들의 작품을 내놨다. 각자 20개의 머리핀과 머리띠를 만들어왔다. 장이 열리고 30분만에 8개만 남았다. 머리띠 3000원, 핀 1000~2000원. 이씨는 “판매가격은 원가수준”이라며 “동네에서 열리는 행사이고 아이들이 좋아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달 8일 오전 11시엔 벽산아파트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문의=041-578-9897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한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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