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유럽 도울 준비 돼있다, 단 조건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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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14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하계 세계경제포럼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다롄 로이터=뉴시스]

중국이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유럽의 구원투수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CNBC 등에 따르면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중국 총리는 14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하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정책결정자에게 “중국은 유럽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더 많은 돈을 유럽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에 대한 지원에는 조건을 달았다. 2016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기 전에 유럽이 먼저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친구가 친구를 인정하는 방법’이라며 은근한 압박도 가했다.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가 인정되면 유럽과의 무역 분쟁에서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다.

 부채 문제에 시달리는 선진국에도 일침을 가했다. 원 총리는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재정과 금융 안정성을 유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세계 1위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위해 최근에는 유로화의 비중을 늘리고 있어 미국과 유럽의 불안은 중국에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도 했다. 원 총리는 “미국은 현재 부채 관리와 재정 적자,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 시장에 대한 중국 기업의 투자를 허락하고 중국에 대한 수출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플레이션 압력 등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중국 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며 “물가는 전체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하현옥 기자

◆시장경제 지위=한 나라의 원자재와 제품 가격, 임금, 환율 등이 정부 간섭이 아닌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체제를 갖췄음을 교역 상대국이 인정할 때 부여하는 지위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덤핑 수출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국가는 무역 분쟁 때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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