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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선택과 강남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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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영대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추석 연휴 정치 담론의 중심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다. 불과 보름 사이에 서울시장과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며 지지율이 무려 50%를 넘나드는 이례적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돌풍이 압도적이라 그 배경도 간략하게 정리되는 것일까.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그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설명으로 그치고 마는 게 보통인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한 듯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불만이 없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정파의 지지도를 뛰어넘는 인기의 배경엔 안철수 개인의 실력과 매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대 의대 82학번인 그는 의사로서의 삶도 보장되어 있었지만 IT 백신 분야에 새롭게 진출, 컴퓨터 보안 문제와 관련해 독보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의학과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에다 CEO로서의 경영능력도 더해졌다. 여기에 그는 정치적으로 좌우 이념의 이분법 구도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 그는 자신의 이념 성향이 논란의 대상이 되자 안보에선 보수적, 경제분야는 진보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그를 한나라당 대변인은 ‘강남좌파’로 규정했다. 중도 성향으로 알았던 그가 친(親)야당적 선택을 하자 일종의 배신감에서 비아냥거리듯 한 말인 듯한데, 그 같은 기대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강남좌파의 의미를 좀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비호감의 언어였던 강남좌파가 호감의 언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좌파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말로만 진보와 서민을 이야기하고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지 않는 좌파 인사들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이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올해 초다. 강남좌파를 크게 히트시킨 인물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조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함께 펴낸 『진보집권 플랜』이란 책이 ‘강남좌파 띄우기’의 진원지였다. 조 교수는 강남좌파를 자임했고, 강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에 살지 않아도 고학력, 고소득이면서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강남좌파를 확대 해석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비판적 사회의식에 익숙하고 현재 각 분야에서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40~50대들은 잠재적 강남좌파의 자질이 있는 셈인데, 이들이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정권을 바꿔보자는 것이 진보집권 플랜의 요지다.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는 전국을 돌며 북 콘서트 형식으로 강남좌파 바람을 일으켰다. 안철수 원장은 청년 대학생들을 위로하는 ‘청춘콘서트’를 2년 전부터 전국 대학에서 펼치고 있었다. 별도로 진행된 두 행사의 초점이 추석을 전후해 안철수로 모아지는 듯하다. 안 원장은 확대 해석된 강남좌파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그의 선택이 있은 이후 중도에서 강남좌파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는 듯한데, 그런 흐름을 계속 이어갈지 향후 그의 발걸음이 주목된다.

배영대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