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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대출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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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변동금리는 연 5.2%, 고정금리는 연 4.92%입니다.”

 지난 9일 기자가 서울 종로의 국민은행 지점에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문의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변동금리가 더 낮은 거 아니냐”고 하자 창구 직원은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높여야 해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시장이 뒤틀리고 있다. 가계부채를 줄이라는 당국의 엄명에 고정금리 대출이 변동금리 대출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고정금리 대출은 변동금리 대출보다 은행이 지는 부담이 크다. 변동금리 대출은 양도성예금증서(CD)나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 등 기준금리가 바뀌면 곧바로 대출금리에 반영한다. 금리 변동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고정금리 대출은 조달금리가 오를 경우 은행이 역마진을 떠안을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고정금리 대출을 변동금리 대출에 비해 적게는 0.6%포인트, 많게는 1%포인트가량 높은 금리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6월 말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발표된 뒤 이런 상식이 깨졌다. 이날 돌아본 다른 은행들도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대출의 금리 차이가 미미하거나 아예 없었다. 우리은행은 고정금리(5년 고정)와 변동금리의 조건을 똑같이 연 5.09%로 제시했다. 변동금리 대출에 대해서는 급여이체, 신용카드 발급, 관리비 자동이체 등의 조건을 걸었지만, 고정금리 대출은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하나은행도 변동금리(5.2%)와 고정금리(5.24%)의 조건이 사실상 같았다. 두 대출 모두 급여이체 등을 하는 조건이다. 이 은행의 고정금리 상품은 15년간 금리가 고정된다. 신한과 외환은행은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가 낮았지만 차이는 0.2%포인트 이하로 미미했다. 한 금융지주사 임원은 “고금리 상황도 아닌데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은 건 정상적이지 않다”며 “당국의 ‘팔 비틀기’로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이 손해를 마냥 감수하는 건 아니다. 은행들은 대신 일제히 대출금리를 올리고 예금금리는 내리고 있다. 은행들이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인 예대마진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CD금리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5.2~6.6% 수준을 기록해 지난해 말(4.4~5.8%)보다 평균 0.8%포인트 올랐다. 다른 은행의 대출 이율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1억원을 빌린 사람의 이자 부담이 연 80만원가량 많아졌다. 신영증권 홍정혜 연구위원은 “거래가 뜸한 CD 금리를 기준으로 이자를 내는 주택담보대출이 전체의 60%”라며 “시장금리 기준인 국고채 3년물이 7월 말 연 3.85%에서 최근 3.36%로 떨어졌지만 CD금리는 고작 0.01%포인트 떨어져 시장과 따로 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은행 예금금리는 연일 추락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7월 말 연 4%에 달했던 ‘키위정기예금’의 금리를 현재 3.7%로 낮췄다. 신한은행은 ‘월복리 정기예금’의 금리를 4.25%에서 4.0%로 떨어뜨렸다. 외환은행의 6개월 만기 ‘YES큰기쁨 정기예금’의 금리도 연 3.75%까지 떨어졌고, 국민은행의 ‘국민수퍼정기예금’도 금리가 인하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체 정기예금 중 연 5%대 예금의 비중은 1.2%에 달했지만 7월에는 0.1%로 작아졌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예금금리는 시장금리를 따라 떨어뜨리면서 대출금리는 고금리를 유지시킬 수 있으니 은행들로선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회수에도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특별 예대상계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3개월 이내에 예금 만기가 돌아오는 고객들이 희망할 경우 예금과 대출을 서로 상쇄한다. 우리은행도 실무적으로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중 특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원금 일부에 대한 상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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