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헬스코치] '무섭게 자란다'라는 말에 숨겨진 비극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마치 매번 알면서도 빠지고 마는 함정처럼,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며 흔히 빠지는 후회막급한 함정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성조숙증이다. 지금 한국의 성조숙증 증가율은 무섭다 못해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한 통계는 그 증가율이 10년 사이 40%에 육박한다고까지 보고한다. 단지 성조숙증 당사자의 개인적인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조숙증의 이런 증가세는 반드시 나중에 국가사회적인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요즘 10살 이전 아이들에게는 무섭게 자란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예전보다 체격이 훨씬 좋고, 더 키가 크며, 더 통통하다. 더러는 빨리 자라는 주변의 아이들을 쳐다보며 내 아이는 왜 이리 더디게 자랄까 하고 내심 걱정하는 부모까지도 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자라는 것이 오히려 바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빠른 성장은 이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10살이 넘어 아이가 갑자기 자라지 않는다며 찾아오는 부모들이 병원마다 줄을 서고 있다. 부랴부랴 체질량 지수를 체크하고 성장판을 검사해보면 아이의 성장판이 이미 닫혔거나 닫히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듣거나, 아이의 골연령이 자기 나이보다 3-5살까지 높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성조숙은 곧 급격한 노화의 예고편이다.

*성조숙의 징후
▲만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하거나 만 9세 전에 생리를 시작하는 경우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는 경우

*성조숙 위험군으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하는 경우
▲아이의 키가 한 달에 1㎝ 이상 지속적으로 자라거나
▲또래 아이들에 비해 2년 이상 크거나
▲어릴 적부터 또래에 비해 신체발달이 빠르거나
▲부모나 친척 등에 사춘기 조숙이 있고 키가 일찍 큰 경우


한 때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빨리 자란 아이들은 불행히도 더 빨리 늙고, 더 자주 아프며, 더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거의 틀림없이 조기에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을 앓거나, 골다공증이 찾아오고 만다.

인류에게 가장 맞는 생활패턴은 실내생활이 아니라 야외활동이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처럼 인류와 가장 가까운 포유류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활동하며 단지 잠을 잘 때에만 잠자리를 만들어 휴식을 취한다. 빌카밤바나 오키나와의 100세 노인들의 노동량이나 활동량을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그들은 때로 젊은이도 힘든 10시간 넘는 노동을 즐길 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야외에서 생활하기가 다반사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이와 너무나 대조된다. 오히려 바깥에서 뛰놀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몇 십 분인가, 몇 시간인가를 재는 게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신체활동을 거의 하지 않다보니 먹는 음식은 모두 몸에 쌓여 과체중이나 비만을 유발한다.

당연히 한국의 소아비만 증가율도 무서운 속도이다. 특별히 더 많이 먹지 않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들이 가진 지극히 정상적인 식욕을 더욱 제한해야 거의 평균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물론 이 역시 아이에게는 매우 심각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들은 근육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종종 또래의 표준체중인데도 성조숙이 찾아온 아이들을 만난다. 예의 그런 아이들의 경우 근육량은 매우 적은 반면, 체지방량은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깥 활동이 적으니 근육량이 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평균체중이라고 해서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체중이 아니라 체지방량(체질량) 검사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챙겨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인의 급한 마음가짐과 하나나 둘 뿐인 아이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아이들이 성조숙이 오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다. 많이 먹여 빨리 키우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소중하게 키운다고 끼고 살았던 것이 아이의 성장 시계를 망쳐놓는 결과를 맞게 한다.

아이에게 바른 성장의 혜택과 기쁨을 주고 싶다면 이런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지금 남들보다 자신의 아이가 조금 빨리 자라고 있다면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하버드 대학 재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우리 부모들이 그리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들이 부모들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공부해’가 아니라 ‘괜찮아’였으며, 그들 대부분은 한결 같이 어린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밖에서 뛰어놀았다고 대답한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칼럼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