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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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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흔히 좋은 붓은 네 가지 덕을 갖춰야 한다고 합니다. 우선 붓끝이 날카롭고 흩어지지 않아야 하니 그것이 첨(尖)입니다. 다음 제(齊)는 털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어야 함을 말하고, 원(圓)은 원만한 모양을 가지고 회전이 잘돼야 함을 일컫습니다. 마지막으로 휘어진 털이 금세 똑바로 돌아오고 수명이 오래가야 하니 그것이 곧 건(健)입니다.

 바이러스 닥터 안철수 교수를 보면 이 ‘첨제원건’의 덕을 갖춘 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의사로서 생뚱맞은 컴퓨터 바이러스에 천착하면서도 도가 텄으니 ‘첨’이고 또한 흔들리지 않으니 ‘제’입니다. 둥글둥글 좋은 인상만큼이나 잡음 없이 공공을 위해 헌신해 왔으니 ‘원’이지요. 이번에 통 큰 양보로 제자리로 돌아옴으로써 ‘건’함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겁니다.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입들이 가만있지를 않습니다. 특히 그를 영입 못해 안달이던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습니다. 닭 쫓던 개가 된 여당은 갑자기 눈을 얄팍하게 뜹니다. 한참 영웅처럼 치켜세우더니 “자기가 무슨 영웅인 줄 안다”는 비아냥으로 바뀝니다. 최악은 면했다지만 야당 사정도 나을 게 없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존재감 위로 “개그콘서트냐”는 볼멘소리가 공허하게 맴돕니다.

 대선 출마를 위한 노림수라는 음모론적 해석도 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못할 것도 없지요. 의사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무료 백신을 개발하는 데 전력한 그라면 신물 나는 정쟁에 꽉 막힌 대중의 콧구멍을 뻥 뚫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홍길주는 말했습니다. “옛 유자(儒者)들은 오직 한 권의 경전으로 공부했어도 군을 다스리는 데 쓰면 훌륭한 목수(牧守)가 되고 형벌을 다스리는 데 쓰면 훌륭한 옥리가 되었으며 재부를 다스리는 데 쓰면 훌륭한 유사가 되었고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 쓰면 훌륭한 재상이 되었으니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어찌 방책 밖에 있겠는가.”

 V3 만들던 열정과 헌신이라면 정치에서도 통하지 못할 게 없다는 얘깁니다. 어딘들 안 통하겠습니까. 공자님이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가 다른 뜻이 아니지요. 사람들 중에는 냉면 그릇 같은 사람도 있고, 곰탕 뚝배기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대야만 한 사람도 있고, 간장 종지만 한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큰 인물은 크건 작건 그릇이 되지 않습니다. 너무 커서 그릇에 담길 수도 없지요. 일정한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 되지 않고 두루 쓰이고 널리 펼쳐져 존재로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조지훈 시인은 그런 큰 인물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었지요. “군자는 그릇이 아니요 그릇을 만들어내는 틀이다. 군자는 너무 커서 담을 그릇이 없는 것이다. 설령 담긴다 하더라도 요리로서 담기는 것이 아니고 담길 요리를 만드는 물이나 불이나 소금으로 담긴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좀 더 가까워졌습니다. 큰 인물은 특정 음식 전문 요리사가 아닌 겁니다. 냉면이건 곰탕이건 적당하게 물을 붓고 최적의 온도로 끓이고 알맞게 간을 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배부르게 하는 이가 큰 인물인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꼭 서울시장이 되고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파워게임의 정치는 그런 자리에서 출발할지 모르지만 국리민복의 정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안 교수 같은 이는 이미 후자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청춘 콘서트’ 전국 투어를 통해 이 땅의 젊음들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게 정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에게 바른 정치의 자세를 일러줘 참된 미래의 정치인을 길러낼 수 있는 훨씬 의미 있고 중요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땅에 부족한 것은 대통령감, 시장감 인물이 아닙니다. 자기 분야에서 중심을 굳건히 잡고 있는 등대 같은 선배들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젊음들이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흔들리고 이 사회가 따라 휘청대는 겁니다. 그런 몇 안 되는 등대가 선거판에 뛰어들기 위해 등불을 끈다면 젊음들의 방황은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출마 포기를 했을 때 외웠을 법한 문장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올 겁니다. 그때를 위해 기억하십시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입니다.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건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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