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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신세대 사랑법 - 50대가 몰랐던 20대 연애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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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세대들에게 데이트 비용은 대부분 더치페이다.지난 8일 서울 명동 한 커패숍에서 따로 돈을 내고 있는 신세대 커플. [김도훈 기자]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열광하고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교수의 ‘청춘 콘서트’에서 희망을 찾는 20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부모인 50대 등 이른바 ‘7080세대’와는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그들만의 사랑법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부모·자녀 세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을 맞아 본지 대학생·대학원생 인턴기자 28명 등 20대 5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변화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곰 같은 여친은 옛말

“연애 초기엔 데이트 장소와 일정 정하는 일을 제가 주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쪽 뜻을 따르게 되면 너무 순종적으로 비쳐 ‘곰 같은 여친’으로 굳어질 거 같거든요.”(김홍희·24·여·연세대 4년)

 “요즘엔 남자들도 연애를 주도하는 걸 피곤해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상대방에게 어디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는 게 낫지요.”(오경묵·23·경희대 4년)

 50대가 청춘일 때는 남녀의 만남에서 무게추가 남자 쪽에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자가 먼저 고백하고, 데이트 일정을 잡는 식이다. 그 무게추가 여자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자들이 가볍게 한발 앞으로 나섰다면, 남자들은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거침없다. 다수의 응답자가 “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답했다. 조제경(25·조선대 4년)씨는 “‘예쁘다’ ‘보고 싶다’ 같은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카톡 사진 보고 소개팅 가요

  “소개팅 전에 주선자가 알려준 상대방의 번호로 카카오톡에서 사진을 찾아봐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약속을 취소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요.”(남보영·22·여·성균관대 4년)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걸 요즘은 미니홈피 대문이나 카카오톡 사진, 문구 등으로 알기도 해요.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홈피 배경음악이 바뀌면 친구들에게 물어봐요. ‘너 헤어졌느냐’고.”(김승환·25·고려대 4년)

 데이트 장소가 극장이나 커피숍 등으로 한정됐던 기성세대와 달리 20대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랑을 가꾸고 있다. 연애가 시작되면 미니홈피나 SNS에 사진과 글 등으로 ‘나 애인 생겼어요’를 공개적으로 알린다. 페이스북에는 연인이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항목도 있다. 반대로 헤어졌을 때도 미니홈피나 SNS를 정리해야 한다. 소개팅 전에도 상대방의 SNS를 훑어보며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이상형은 누구인지 예습한다. 각자 입력한 데이터를 프로그램으로 돌려 적합한 상대를 매칭해 주는 ‘코코아북’ 같은 사이트나, 근거리의 이성을 추천해 주는 ‘이츄’ 같은 스마트폰 애플로 실제 커플이 되는 사례도 있다. ‘카카오톡’이나 ‘마이피플’ 등을 실시간으로 이용하며 무엇을 하고, 입고, 먹는지 24시간 ‘SNS 대화’를 나눈다.

한 사람과만 데이트? 아니죠

  “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중이라도 서로 사귀기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김모씨·26·여·회사원)

 “요즘은 남자와의 만남을 인맥 쌓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일주일에 2~3번씩 소개팅을 하는 친구도 봤어요.”(이보배·23·여·중앙대 3년)

 50대에게는 ‘남녀 사이에 어떻게 친구가 가능하냐’는 게 상식이었다. 요즘 세대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사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어장관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장관리’는 꼭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여러 명의 이성과 꾸준히 연락하며 인맥을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일부는 “어장관리도 능력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폰 비번은 애인에게도 비밀

  “남자친구가 내 미니홈피의 비밀번호를 궁금해하며 알려 달라고 한 적이 있지만 거절했어요. 그것마저 공유하면 나만의 영역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김혜성·24·여·고려대 4년)

 신세대는 무엇보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신세대에게 인터넷과 모바일은 사랑의 전달 통로이지만 동시에 끝까지 지켜야 할 개인만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애인이나 친구가 이들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알려 하는 순간 상대방의 자세가 ‘보호 모드’로 변한다. 이 비밀을 공개할 것을 강요 받을 경우 이별을 고려하는 이들도 있다.

헤어지면서 소개팅 해줘요

  “사랑할 때도, 헤어질 때도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신소영·23·여·중앙대 4년)

 “헤어지기로 한 당일, 같이 영화 보고 헤어지거나 여전히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 많아요. 서로에게 소개팅을 시켜 주기도 하고요.”(최누리·23·여·명지대 4년)

 50대의 경우 ‘한번 헤어지면 끝’이었지만 신세대는 서로의 차이와 갈등, 헤어짐까지 ‘쿨(Cool)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되 이성적인 대화로 풀어가며 서로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치관이나 의견 차이를 갖고 피곤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대에겐 남자 위주 마초식 연애 안 통해”

7080세대가 본 신세대 사랑

경기대 송종길(48·다중매체영상학) 교수는 “신세대는 사랑에 있어서도 서로의 차이와 개성을 인정하는 톨레랑스(관용)와 존중을 중시한다”면서 “민주사회의 키워드인 인권과 다양성이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생활방식)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민주화된 환경에서 자란 신세대는 한쪽이 주도하는 사랑에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강원대 정윤식(55·신문방송학) 교수는 “과거의 사랑 방식은 남성 위주의 마초식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과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내가 깨닫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고려대 박길성(54·사회학) 교수는 젊은 세대가 사랑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분리하는 데 대해 “핵가족 안에서 자라면서 (남들과) 나누기보다는 자신만의 비밀과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글=김택환·송지혜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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